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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코인으로 받습니다.’

2,260 ETH + 1.6 BTC = ?


크립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2025년 조사 결과, 한국인 응답자의 27%가 코인, NFT 등 가상자산 거래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중 89%는 비트코인 위주의 ‘코인 투자자’들로, 이제는 일부의 Risk-lover를 넘어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크립토를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2,260 ETH + 1.6 BTC가 뭐냐고? 정답은 한화 약 100억 원인데, 이는 한 국제기구 벤처펀드에 의해 투자된 크립토의 총액이다. 우리가 모를 수가 없는 그 기구, 아예 블록체인 기술에까지 투자를 이어가며 각별한 블록체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그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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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은 바로 유니세프

유엔 산하 최초의 벤처펀드

2014년 출범한 유니세프 벤처펀드는 최초로 유엔 시스템 내에 설립된 벤처펀드로, 일반적인 ODA 기부금이 보수적인 집행 기준을 따르는 것과 달리 벤처 캐피털 모델을 차용해 계산된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감수하는 모델을 취한다.

하지만 단순히 수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유니세프는 작은 실패를 용인하더라도, 벤처펀드를 통해 새로운 기술 시장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아동, 청소년, 취약계층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힌다.

지난 10년동안 모집된 기부금 등을 통해 1,000만 달러의 현금 투자와 약 670만 달러 규모의 크립토펀드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투자 세부 영역별로는, 데이터 사이언스 및 AI 분야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그 뒤를 블록체인, 드론 기술이 잇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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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과는?

유니세프 벤처펀드는 설립이래, 스타트업 및 자사 주도 프로젝트를 포함한 153개 솔루션에 투자해 누적 1억 7,400만 명에게 혜택을 제공했다.

또한 포트폴리오 기업의 83%가 유니세프 초기 투자금 대비 12.4배에 달하는 후속 투자를 유치한 만큼, 새로운 기술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를 나름 잘 수행하는 중.

구체적인 수익성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2024년 기준 포트폴리오의 46%가 순이익을 내고 있으며, 70%가 매출을 발생시키는 중이라고 하니, 일단 포트폴리오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잠시 제쳐두도록 하자.


2. 유니세프는 왜 블록체인에 주목했나

유니세프가 블록체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기반 기술이 가진 구조적 특성, 탈중앙화 때문이다. 기술적 맥락에서 블록체인을 살펴보며 인도적 지원사업 중 발생하는 페인포인트를 블록체인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즉 유니세프가 왜 블록체인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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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앙화가 주는 신뢰와 투명성

전통적인 기부 시스템은 자금이 수혜자에게 도착하기까지 국제 은행, 현지 정부 등 수많은 중개자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래비용과 느린 처리 속도, 무엇보다 자금 유용 문제는 고질적인 걱정거리였다.

블록체인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모든 거래 내역을 위변조가 어려운 방식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분산원장 기술을 통해 기부금이 언제, 누구에게, 얼마만큼 전달되었는지를 외부의 개입 없이도 실시간으로 증명 가능한 것. 따라서 내 기부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불안한 기부자의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탈중앙화에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속도와 비용 면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결제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보다 불리하다. 그럼에도 유니세프가 블록체인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인터넷과 같은 기본 인프라가 미약하고, 금융시스템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에서의 도달성을 고려한 것.


은행 계좌 없이 거래를 한다고?

전 세계 17억 명 이상의 성인이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대신 그들 중 대다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지갑은 신분증이나 은행 지점 없이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금융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개발도상국이나 난민 캠프에 구호 자금을 전달하고, 금융의 포용성을 높일 수 있다.


스마트계약을 통한 구호 골든타임 확보

블록체인의 정수는 스마트 계약에 있다. 이는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도록 하는 코드를 블록체인에 배포하는 방식으로 자동화된 계약을 가능케 한다. 예컨대, 수해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구호금을 전송하는 계약을 통해 관료적인 승인 절차를 생략, 빠르게 자금이 필요한 수혜자에게 구호금을 전달할 수 있다.


3. 포트폴리오가 궁금해

앞서 말했듯, 블록체인은 유니세프 벤처펀드의 주 투자처이다. 아래 그림은 현재 투자가 활성화된 상태인 블록체인 기업들을 지도에 표시한 것인데,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상대적으로 개발도상국이 많은 대륙에 위치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유니세프 벤처펀드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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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1. 이더리움으로 빵사먹기

네팔의 Rahat은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현금 및 바우처 지원 시스템이다. 디지털 토큰 형태로 발행된 구호 자금은 수혜자의 디지털 지갑으로 전송, 수혜자는 이를 지역 상점에서 물품으로 교환하거나 현금화할 수 있다. 특히 Rahat은 케냐에 진출하며 Kotani Pay와의 통합을 통해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케냐의 대중적인 모바일 머니인 M-Pesa로 즉시 환전할 수 있게 하는 등 개발도상국의 실물경제와 크립토를 이어주며 수혜자에게는 금융 안정을, 기부자에게는 자금의 투명성을 보장한다.


도전 2. 신선한 백신 지키기

전 세계적으로 백신의 60%가 공급망 실패로 낭비되고 있으며, 백신 비용의 85%는 공급망에서 발생한다. 이토록 중요한 백신 공급망을 허투루 관리해서 되겠는가. 여기서 StaTwig가 등장, 이들은 백신의 위치, 취급 방식, 온도, 인증 등 공급망 전반의 상태를 블록체인에 기록한다. 이를 통해 콜드체인 이탈, 유효기간 경과, 위조품 유입 등을 중앙의 개입 없이도 실시간으로 추적, 관리가 가능하다.

2020년 StaTwig는 유니세프 크립토펀드로부터 125 ETH를 지원받아 2025년 현재 이 투자를 졸업한 상태이다. 최근에는 트럼프 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설립과 맞물려 정부 공급망 효율화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자 분투하고 있는 중.


도전 3. 인터넷 없이 인터넷뱅킹하기

Xcapit은 남미의 고질적 인플레이션과 금융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Web3 암호화폐 지갑을 제시한다.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지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SMS를 통해 접근 가능한 스마트 월렛을 제공하는 한편, 지역 은행과 협력하여 신용기록이 없는 사용자가 암호화폐 담보를 이용해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하는 등 금융 포용성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페루 쿠스코에서의 시범사업을 통해 거래비용을 건당 0.01달러 수준으로 절감하였고, 거의 즉각적인 지급 시스템을 구축한 Xcapit은 2021년 43.77ETH의 초기자금을 투자받은 대에 이어 2025년에는 106,500달러와 45.15ETH를 추가로 투자받는 등 유니세프 벤처펀드의 모범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도전 4. 원격으로 나무 심기

Treejer는 개발도상국의 재삼림화를 위해 전 세계 나무 심기 기금 제공자와 개발도상국 농가를 연결한다. 후원자가 Treejer를 통해 나무를 심으면 해당 나무에 대응되는 NFT가 발행되고, 후원금은 스마트 계약에 묶이게 된다. 현지 농부가 나무를 심고, 이를 앱을 통해 인증하면 자금이 자동으로 농부에게 지급되는 시스템.

Treejer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농부들이 나무를 유지, 관리하는 대가로 지속 가능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하며 기부의 투명성과 지역사회의 경제적 자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벤처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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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니세프와 블록체인, 어디까지 왔나?

블록체인은 그저 마케팅일 뿐이라는 말은 유니세프에게 유효하지 않다. 유니세프는 VC를 통해 실제 작동하는 구호 인프라를 구현해냈을 뿐 아니라, ‘암호화폐로 빵을 살 수 없다’ 는 비판을 극복해 낸 괄목할만 한 성과를 이뤘다.

그저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EU의 Cyber Resilience Act와 같은 규제는 오픈소스 개발자들에게 과도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여 오픈소스 생태계를 위축, 개별 개발자들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유니세프의 Web3 구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은 인터넷과 전력 인프라 위에서 작동하는데, 여전히 전 세계 수십억 명은 인터넷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환경 아래 있다는 점을 떠올려라.

유니세프 벤처펀드의 포트폴리오는 많은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더라도, 인도주의적 지원활동에 투명성과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표준을 세웠다. 그 중심에는 블록체인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투자의 수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를 살아갈 양식을 제공하는 기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고문헌 출처

https://eiec.kdi.re.kr/policy/domesticView.do?ac=0000196097

https://blogs.lse.ac.uk/internationaldevelopment/2025/07/10/how-blockchain-is-contributing-to-the-humanitarian-sector-as-of-2025/

https://www.unicefventurefund.org/portfolio/statwig-transparent-vaccine-supply-chain-reduce-wastage

https://www.unicefventurefund.org/portfolio/xcapit-building-platform-using-blockchain-and-ai-increase-easy-safe-access-financial

https://www.unicefventurefund.org/portfolio/treejer-protocol-connecting-tree-funders-rural-planters-worldwide

https://www.unicefventurefund.org/story/twists-turns-and-forks-road-future-open-source


작성자: ITS 29기 류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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