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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로 Jan 18. 2022

한예종 연극원에서 네이버 개발자가 되기까지 2편

계속 문을 두드리다 보면

2-1 머리 쓰는 기술


공장 안에 있는 게 너무 답답했다.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네모 상자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하루도 안 지나서 이럴 수 있을까 싶었다. 내 판타지는 거기서 끝이었다. 공간이 주는 힘은 강력했다. 사람마다 공간에서 얻는 에너지의 결은 다르기 마련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곳이 놀이터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겐 공장이라는 공간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곳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에 계속 있다보면 하루도 안돼 사표 쓰고 울 것 같았다.  하.. 뭘 해먹고 살아야 하지...


그래 몸 쓰는 기술 말고 머리 쓰는 기술을 알아보자

 집에 와서 검색창에 '머리 쓰는 기술'이라고 검색을 해봤다. 검색을 잘못했는지 마땅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적성 테스트라는 걸 해봤다. 테스트 결과를 보니 문과 계열의 직업을 추천해주는 내용이 많았다. 아 이건 아닌데. 좀 더 유심히 살펴보니 유일하게 기술과 관련 있는 직업이 있었다. 프로그래머였다. 프로그래머를 검색해봤다. 온갖 어려운 용어들이 가득했다. 뭐 하나 검색을 해도 원하는 내용을 제대로 찾기 어려웠다. 나는 중학생 때 C언어 책을 우연히 접한 적이 있다. 이상한 외계어로 가득해 10 페이지가 채 넘어가기도 전에 덮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프로그래밍은 블랙박스나 다름 없었다. 수학을 잘해야 한다는 편견도 한몫 했을 것이다. 수학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비벼볼 심산은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프로그래밍 강의가 있는 사이트를 들어가게 되었다. 생활코딩? 비영리 기관이라 써져 있고 강의 내용을 보니 신뢰감이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 간 생활코딩에 올라와 있는 웹 프로그래밍 강의를 모두 들어보았다. 웹이 돌아가는 원리를 배우고 html, css를 작성해보니까 화면에 그럴싸한 사이트 하나가 만들어졌다. 정말 뿌듯했다. 코드를 작성하니 화면이 만들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쉬운 내용들인데 당시에는 그 작은 지식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찍던 시기에 이 강의는 프로그래밍의 세계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지식의 작은 파편 하나가 한 사람을 구원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강의를 다 듣고 나니 복학 시기가 다가왔다. 우선 학교에 복학하기로 했다. 졸업을 하려면 전공필수 수업을 들어야 했다. 3학년 1학기 무렵이었기 때문에 먼저 졸업을 하는 게 유리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프로그래밍을 입문했던 만큼 관련 수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다행히 학교 수업 중에 아티스트를 위한 프로그래밍이라는 교양 수업이 있었다. 프로세싱이라는 툴을 이용해서 자바 언어로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었다. 바로 신청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을 깊게 배우기엔 부족했다. 교양 수업이었으니 그럴만하다.


어느정도로 알아야 프로그래머로 취업할 수 있을까?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드는 의문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생활코딩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이렇게 배운 걸로 취업하기엔 앞이 막막했다. 어디까지나 기본 지식을 익혔을 뿐 실제 서비스를 어떻게 개발하면 되는지 알지 못했다. 학교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하루라도 빨리 코딩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을 가자니 학교 수업과 병행하기에 시간이 맞지 않았다. 조금 유동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과외를 알아보았다.


2-2 선생님 대체 어디 계세요


[첫번째 과외]

 어디선가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우려면 가장 기본적인 C언어부터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C언어 과외를 찾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프로그래밍 교육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파이썬이나 자바스크립트가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땐 그런 것도 잘 몰랐고 인터넷에 떠도는 낭설을 믿었다. 참고로 자바스크립트는 초심자에게 적합한 언어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난 쉽게 접하고 배우는 게 제일 효과적이라고 믿는 편이다.)


 선생님이 추천한 C언어 책을 하나 사서 개념을 조금씩 공부했다. 수업은 내가 공부했던 내용을 선생님이 훑어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미 공부했던 내용을 가볍게 복습하는 느낌이라 그렇게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수업 시간에 자꾸 늦지만 않았으면 그럭저럭 들을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회차가 진행될수록 수업 준비도 제대로 해오시지 않았다. 나도 나름 3년간 과외를 해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나를 돈으로 보는지 학생으로 보는지 알 수 있었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때려치우는 게 맞겠다 싶었다.


 그렇게 첫번째 과외를 관두고 한동안 학교 수업에 집중했다. 한번 과외를 관두니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이 조금 사그러들었다. 김이 샌 것이다. 학교 생활이 바쁘다 보니 체력도 딸렸다. 잠시동안 프로그래밍을 멀리 했다. 희곡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입시 과외도 했다. 집에서 지원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안됐기 때문에 모든 건 내가 벌어서 해결했다. 그렇게 일상에 치여 살다보니 벌써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종강을 하고 나서 시간이 많아졌다. 자유 시간이 생겼다. 이참에 다시 코딩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보내다간 그냥 이렇게 졸업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 코딩을 하려고 하니 드문드문 기억이 나긴 하는데 어떻게 하는 거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뭔가를 배울 때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데 뭔가를 잊어버릴 때는 아무런 노력이 필요 없었다. 속상했다.


아.. 진짜 어떡하지. 이렇게 공부해서 도움이 되긴 하나? 어차피 배워도 바빠서 안하다 보면 또 까먹을텐데 ㅠㅠ

 그래도 공부를 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 믿었다. 다시 과외를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첫번째 과외에서 배웠던 C언어는 실제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크게 사용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두번째 과외]

 진짜 사람들이 써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안드로이드 앱 개발을 알려준다는 과외 공고를 보게 되었다. 이커머스 회사에서 서비스 개발을 하다 온 선생님의 경력은 화려했다. 또 이렇게 나는 해본 적도 없는 앱 개발 과외를 시작했다. 먼저 안드로이드 스튜디오를 설치했고 안드로이드는 자바 기반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자바 관련 설정도 필요했다.


 가장 처음으로 기초적인 화면 레이아웃 구성을 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레이아웃 시스템에서 화면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기초지만 쉽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처음 접하면 낯설기 때문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레이아웃을 구성하기도 전에 이미지를 서버에서 받아와 리스트로 뿌려주는 수업이 진행되면서 뇌에 과부하가 왔다.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수업이 끝났지만 다음 수업에 가기가 싫어졌다.

 선생님도 내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가르치는 게 빡세다고 느끼셨는지 회사 일이 바빠졌다며 더 이상 과외를 진행하지 못하겠다는 문자가 왔다.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알겠다는 답장을 보내며 다른 과외 선생님을 알아보았다. 수업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지만 공부해야 되는 개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렵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번째 과외]

 곧이어 세번째 과외 선생님을 찾았는데 SK에서 웹개발을 하시는 분이었다. 뒤늦은 감이 있었지만 생활코딩을 하면서 웹을 입문했던 기억이 있어서 C언어나 안드로이드보다 웹개발을 배우는 게 차라리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번째 선생님도 웹을 바로 가르쳐주시기 보다 C언어를 먼저 교육해주셨다. 그때 과외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C언어를 먼저 가르치려고 하셨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공감은 안됐다. 다행히 앞서 C언어를 미리 공부했던 게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웹개발 공부를 시작할 때 생겼다. 선생님은 데이터베이스와 SQL 수업을 먼저 진행하셨는데 웹개발에 대해 아는 거라곤 html과 css가 전부라 너무 생소했다.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조차 이해를 못한 채 수업이 진행되니까 학습을 포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국 세번째 수업은 내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착잡함이 눈덩이 굴러가듯 커져갔다. 생활코딩, 교양수업, 그리고 세 번의 과외를 받기까지 제대로 된 개념 하나 못 배운 것 같았다. 눈으로 볼 수 있을만한 결과물 하나 만들지 못해 시간만 축낸 것 같았다. 정말로 눈물이 났다. 역시 프로그래밍은 내 길이 아닌가... 무슨 기술을 배워야 하지?.. 전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를 지탱해준 의문 하나가 없었다면 정말이지 포기했을 것이다. 진짜 잘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말이다.


...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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