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못했던 집들이를 오늘 하기로 했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오고 결혼과 출산, 육아를 같이 해온 절친의 가족을 초대하는 날이다.
약속은 이미 한 달 전에 했는데 거의 한 달쯤 주말에 각자 일정이 있어 못 만나다가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다. 메뉴는 예전에 정해두었고 사야 하는 것들도 정해져 있었고 오늘 아침에 미리 준비해 둘 것도 생각을 해두었다. 처음 만나는 가족도 아니고 서로 흠잡는 사이도 아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이인 친구와 그 가족. 준비가 미흡하거나 맛이 없더라도 다 이해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시험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과는 늘 한 가지 음식을 해 먹다가 몇 가지를 준비하려고 하니 뭘 먼저 하는 게 좋을지 일의 순서에 대해 생각하느라 내 머리는 다소 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친구를 초대하는 일이 나의 일상과는 조금 다른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이 몇 개월만이긴 했지만 그리 긴장을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엄청나게 큰 행사를 준비하거나, 아주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직장에서처럼 이 일의 성공여부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청소를 할 것이고, 나는 음식만 준비하면 되었다. 더구나 메인요리는 구매하기로 했고 나는 그저 파스타 한 가지만 준비하면 끝이었다.
생각해 보니 전에도 손님을 초대할 때 그랬던 것 같다.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면서 몸과 마음이 바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나의 메타인지가 잘 작동했다. 얼마 전에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소통>을 읽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나 스스로 불편감을 느낀다는 것을 인지했다. 나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버퍼 역할을 해서 나는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30년을 넘게 살도록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시험을 밥 먹듯 쳐야 했던 학생 시절에는 과도한 긴장으로 늘 손발이 차가워졌고 배가 아팠고 머리가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사회인이 되어서도 긴장되는 일이 있으면 같은 증상이 반복되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내부시스템이 오작동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 스스로 힘들다고 느끼는 이 증상을 평생 가지고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은 나. 앞으로의 편안한 삶을 위해 내 몸과 마음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잘 다루는 법을 아는 전문가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