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 미정 Sep 26. 2024

유방암 업고 백수생활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6개월 전만 해도 소위 말하는 N잡러였다. 

영양사도 하면서 강의도 하고 요리블로거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목표하는 열심히에는 부합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나를 채근했다. 

더 부지런하게, 더 열심히, 남들보다 더 빨리 새로운 생각을 하려고 했다. 


딸이 어릴 때 일때문에 잠깐씩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겼던 적이 있다.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엄마가 

"가윤이가 너 흉내 내더라. 컴퓨터 타자 치는 흉내 내면서 전화를 하는데

네네. 알겠습니다.라고 상냥하게 전화받다고 끊으면, 씩씩 대면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라고 짜증 내더라. 

조심해야겠더라."라는 친정엄마의 말을 전해 들으니 얼굴이 화끈했졌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나를 돌이켜 볼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정신없이 살다보니 나를 돌이켜 볼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친정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늘 화가 나있었고 밖에서 화가 난 것을 가족들에게 풀기도 했었다.


<unsplash.com 이미지 사용>


그러다 유방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열심히 하던 모든 일을 멈추게 되었다. 

사람들이 유방암에 걸린 이유가 내가 너무 욕심을 내서 또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렇다고 했다. 

지인들은 내가 유방암에 걸린 이유를 찾아 위로해주고 했지만 그런 말들은 나에겐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유방암에 걸린 후 '이렇게 금방 정리될 수 있다고?'라고 느낄 정도로 그렇게 놓지 못했던 일들과 빠르게 이별했다. 


출퇴근이 없는 백수로 지내면서 한두 달은 집 앞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행복했다. 그러나 그 이후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집에만 있다 보면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르면서 일을 다시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아이도 점점 커가고 나이도 점점 먹어갈 텐데. 내 일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라는 불안감이 올라오면서 영양사 구직사이트에 들어간다. 

괜찮은 자리 있으면 이력서를 써볼까 싶기도 하다가 

'일 년을 논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받으면서 일하면 안 되지.'라고 마음을 접는다. 

그러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날인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또다시 구직사이트에 들어가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unsplash.com 이미지 사용>


일이라는 것이 하면 너무 힘들고 

안 해도 마음이 힘드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시시포스가 무기력함을 이기려고 바위를 그렇게 굴렸는지 모르겠다.


나 또한 무기력함을 이기기 위해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지키려고 노력한다. 

루틴이 너무 빡빡해서 가끔은 이렇게 계획을 세우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어제도 영양사 구인란에 들어가서 구직활동을 한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있어 친한 친구에게 

"나 이제 일할까?"라고 물었다. 

친구는 "아직은 시기상조야. 너 지금 좋아 보여. 놀아."라는 답장이 온다. 

친구의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놀겠냐. 더 놀아보자.'라고 마음을 접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는 내 마음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일 하지 않으면 행복할줄 알았는데 막상 백수가 되어보니 썩 그렇지도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영양사 엄마의 현장체험학습도시락 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