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발걸음 Mar 19. 2024

두 아들의 아지트


우리 집 거실이 두 아들의 아지트로 변신했다.

분명히 이주일 전 오전에 청소할 때만 해도 거실 매트 위에 물건이 조금만 있어서 나름 깨끗했는데.

책을 한 권 두 권 가져오더니 여기저기에 쌓고 꽂기 시작하는 모습만 보고는 잠시 그러려나 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일을 하는 사이 뭔가 분주한 소리가 들린다.

이것저것 옮기고 쿵쾅쿵쾅 소리에 뭐지? 잠깐 들여다보니... 아... 이건 뭐지 싶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거야!"

"꼭 이렇게 물건을 다 펼쳐놓아야 하는 거야?"

"응! 이렇게 쌓아놓아야 내 공간, 형 공간이 구분되잖아!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아....... 그래? 일단 해봐......."

내가 뭐라 해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그냥 포기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거실을 보는데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책은 보이는 곳마다 벌려서 쌓아두고 눕혀 놓고...

물건 보관통은 다 끌고 와서 경계선을 만들어놨다.

달걀판은 차곡차곡 모아서 한쪽에 진열해 놓고... (내가 재활용 봉투에 넣으면 잽싸게 꺼내서 나중에 무언가를 만들 때 꼭 써야 한다며 챙겨간다.)

접이식 책상을 가져왔는데, 분명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종이접기 한 것이 한가득이다.

작은 이불은 어디서 다 챙겨 왔는지 누울 때 필요하다며 깔아놓고...

수납통도 어디서 다 꺼내서 물건들 놓아두고...

인형, 장난감을 들고 와서 여기저기 갖다 놓고...

이게 무슨 아지트냐 싶지만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이니 건드리면 안 된단다.

치울 때는 아주 느릿느릿하는 아이들이 이럴 땐 재빠르다.



두 아들이 아지트라고 만들어놓은 거실



이런 집 상태가 2주가 지나가고 있다.

물건이 어찌 점점 더 쌓이는 것 같다.

저쪽으로 발을 디딜 틈도 없고 (사실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잠깐이라도 눈길을 주면 머리가 어지러워 금세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린다.

신기한 건 아이들은 전혀 불편함 없이 요리조리 잘 다닌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러지 못해서 아이들 등교, 등원시킨 후 나도 모르게 도서관이나 카페로 탈출했는지도 모르겠다.

거실에 있으면 시선이 자연스레 갈 수밖에 없는데, 내 마음도 어지럽혀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만 이렇게 마음이 어지러운지 궁금해서 두 아들에게 물어본다.

"저렇게 어질러져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그럼, 당연하지! 내가 읽고 싶은 책, 필요한 물건들이 다 가까이 있으니까 너무 좋은데?"

"지나가다 물건 밟고 넘어지거나 해서 위험할 것 같은데?"

"잘 보고 다니면 안 넘어져! 괜찮아, 괜찮아."

"아, 그래? 그럼 언제쯤 다른 공간으로 변신시킬 거야?"

"글쎄? 모르겠는데?"

아... 대청소하자고 하지 않는 이상 이 상태가 이어지겠구나 싶다.


처음엔 매트에만 머물러 있던 아이들의 물건이 점점 바닥까지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건 봐줄 수가 없다!! 

"어? 매트 위에서만 아지트 해야지, 바닥까지 넘어오는 건 아니지. 얼른 아지트로 옮기든지 해!"

"어? 알았어." 말하지만 느릿느릿하다.

이런... 치우라고 할 때는 어쩜 이리 내 말이 안 들리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남편과 함께 저 공간을 바라보면 서로 헛웃음이 나온다.

치우고 싶지도 않고 손을 대고 싶지도 않다.

빨리 아이들 방을 만들어줘서 자기네 방에 하라고 하던지 해야지.

(따로 자는 것을 시도해 봤지만 무서워서 아직은 못 자겠단다...)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더 길어졌다가는 내 정신건강에 해로울 것 같다.


둘째 아들이 "형, 우리 이제 이것 치우고 우산집으로 만들까?"라고 첫째에게 물어보던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당분간 그대로일 것 같다.

내가 적응해야 하나??


두 아들이 만든 우산집


(추가) 다음날 드디어 둘이 우산집을 만들었다.

그런데, 거실이 아닌 다른 작은방에 만들었다.

이로써 아이들의 아지트 공간이 두 개로 늘어버렸다.

우리 집에 우산이 저렇게 많았나 새삼 느끼면서 저 방에도 들어가긴 글렀네 싶다.

발 디딜 팀도 없는데, 둘은 잘도 요리조리 들어가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것을 언제까지 지켜보아야만 하는 것인가? 언제쯤 개입해야 할까? 그냥 놔둬야 하나?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봄이 오는 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