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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Jun 07. 2024

어머니와 TV

가끔 시어머니,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오실 때가 있다.

우리 4인 가족이 내려가면 좋겠지만 주말이 제일 바쁜 남편이기에 쉽지 않다.

가까우면 나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가겠지만, 시댁은 강원도, 친정은 부산, 우리가 사는 곳은 경기도.

멀어도 너무 멀다.


어머님은 대학병원 진료 때문에 오시는 경우가 많고, 친정엄마는 손주들이 보고 싶을 때 가끔 올라오신다.

편안히 계시면 좋겠지만, 두 분 다 우리 집이 본인들이 생활하는 익숙한 공간이 아니다 보니 (아무리 아들, 딸 집이라고 해도 본인 집만큼 편하지는 않으니) 불편해하시는 모습이 살짝 보인다.

나도 친정, 시댁 가면 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모를 꺼끌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2박까진 괜찮은데 3박이 넘어가면 빨리 우리 집에 오고 싶어 했던 것이 떠오르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싶다.

'즐거운 나의 집' 노래에도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가사가 있지 않은가.


우리 집에 오시면 우리와 함께 나가지 않으면 집에 계시는 경우가 많다.

여기 아는 사람도 없고 혼자 나가셨다 길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에서다.

남편이 총각이었을 때, 어머님이 서울에 오셨다가 길을 잃으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남편이 출근하고 어머님 혼자 심심하셔서 밖에 나가셨는데, 돌아가는 길을 몰라 한참 헤매셔서 그때 이후로는 혼자 나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강원도, 부산에서는 부지런히 여기저기 다니시는 분들이다 보니 더 답답하실 것 같다.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시다 보니 TV가 벗이 되어 주신다.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다. 남편은 일하러 가야 하고, 나도 집안일과 두 아들 보려면 정신이 없기에.


우리 집에는 TV가 두 대 있다. 안방에 한 대, 침대방에 한 대. 그런데 우리 가족이 보는 경우는 드물다.

남편과 나는 TV를 보지 않고, 두 아들도 요즘엔 밖에서 노느라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같이 살고 있는 아이들 이모(여동생)가 침대방에 TV를 들여놓고 가끔 본다.

어머님, 친정 엄마가 오시면 침대방에서 주무신다.

TV가 있으니 두 아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은 모양인지 할머니 방을 들락거린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러 가면 좋겠지만, 잘 들어보면 이야기 : TV의 비중이 3 : 7 정도인 것 같다.)

가서 보면 TV를 보고 있다. 내 발소리가 들리면 자는 척하고...

애들이 보는 것이면 상관없는데 드라마를 볼 때가 있다. 어머님께 보지 말라고 할 수는 없으니 조금만 보라고 말하고 나오긴 하는데... 뭐, 그게 애들이 조절할 수가 있나.

가끔 너무 안 나오면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면서 이제 그만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제야 나와서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선 말이다.





어머님, 친정 엄마가 올라오셔서 TV를 보고 계시면 마음이 좀 짠하다.

각자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제대로 없이 자식들 키우느라 시간을 다 보내셨으니 말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자신은 뒷전인 삶을 살아오셨는데, 지금도 그러신 것 같다.

몸이 힘드실 텐데도 자식들에게 무게를 지우지 않으려고 일이 있으면 하려고 하신다.

자투리 시간에 친구들을 잠깐 만나시는 것 아니면 TV 시청이 유일한 낙이 신 것 같다.

어머님 댁에 가도, 친정 엄마 댁에 가도 거의 TV가 켜져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삼 형제를 키운 어머님의 삶의 굴곡도, 아버지가 있지만 행복했을까 싶을 정도의 삶의 굴곡을 가지고 계신 친정 엄마의 삶도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나는 두 분처럼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예전엔 몰랐는데 두 분의 얼굴에 주름이 조금씩 늘어가고 지친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자식들이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지, 자주 연락하고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효도라고는 하는데, 그게 또 왜 그리 쉽지 않은지.


가끔 소리에 예민한 내가 TV 소리가 가득한 두 분의 공간에 들어가면 귀가 아파서 얼굴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연세가 있으시니 볼륨을 크게 해놓고 들으시니 어쩔 수 없는데 말이다.

찰나의 순간이라 두 분은 보지 못하셨을지 몰라도 나는 알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차가운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에 몸서리칠 때가 있다.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가끔씩 나오는 차가운 나의 모습에 내가 놀라고 있다.

얼굴 표정이 겉에 다 드러나는 편이라 상대방이 느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나는 냉정하고 차가운 편인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가끔 그런 면이 나타나는 것이지 보통의 내 모습은 그렇지 않으니...

남편에게 가끔 물어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가끔 버럭 댈 때가 있기는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감정 컨트롤도 잘하고 있는 편이라고.

(그렇다. 예전의 나는 심한 버럭이었다. 감정 컨트롤을 정말 하지 못했으니. 그것을 두 아들을 낳고 나서 알았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그전에는 사회적 모습을 보이느라 꼭꼭 숨겨두고 살았으니 제대로 몰랐던 거다.)

그런데, 가끔 느낀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후회할 말과 행동을 아직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고생만 하신 두 어머님도 자신의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다. 두 분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하시지만.

내가 보기엔 자식, 손주가 우선인 삶인 것 같으니까.

연세가 많다고 이 나이에 뭘 하겠냐 하시지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삶에 여유가 들어올 공간을 아주 조금만 들여놓으면 그것이 조금씩 커져나가니 말이다.

각자 삶의 가치가 있으니 내가 더 이상 관여할 수는 없지만...

두 분이 삶이 다채로운 감정으로 가득 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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