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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거 해!

배움을 사랑하는 청소년 (3)

by 교육혁신가 이현우

은하수학교가 시작된 뒤, '프로젝트 기획단'이 결성되었다. 프로젝트 기획단은 프로젝트의 대주제와 분야를 결정하며, 한 해의 방향을 제시할 중요한 문구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1기 프로젝트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까?”

“은하수의 ‘별’을 컨셉으로 삼아볼까.”


한참을 토론 끝에 그렇게 ‘별 걸 다 한다’라는 대주제가 정해졌다. 은하수학교의 슬로건인 ‘도전’을 담아,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일에 도전하자는 의미였다. 시험, 과제, 수행평가 등 해야 할 일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진 청소년들은 하고 싶은 일은 미뤄두기 쉽다. 청소년들은 은하수학교에서 만큼은 별의별 도전과 상상을 펼쳐보자는 마음을 담아 대주제를 세웠다.


매력적인 대주제는 완성되었지만, 정작 나는 정말 도전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 쉽지 않았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진로와 생활기록부를 떠나, 진정으로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


“뮤지컬!”


내게 별의별 도전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뮤지컬 무대에 서 보고 싶었다. 당시 나는 연기, 춤, 노래를 통해 감동을 전하는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은하수학교에서라면 실패해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도전을 결심했다.


그리하여 10명의 청소년들이 모여 프로젝트 ‘미제’(未題: 정해지지 않은 제목)가 시작되었다. 뮤지컬 경험이 전무한 우리는 춤과 노래를 배운 적이 없어 실력은 부족했다. 나이와 경험이 달라 친해지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두 뮤지컬 무대를 올리고자 하는 꿈은 같았다. 열심히 연습하며, 우리는 조금씩 하나가 되어갔다.

화면 캡처 2025-12-01 234815.png 뮤지컬 커튼콜 연습


3개월의 시간은 짧았다. 첫 도전인 만큼 모든 것이 서툴고 느렸다. 시나리오 작성, 넘버 연습, 커튼콜 등 익혀야할 개념과 작업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열정적으로 임했다. 부족한 노래 실력을 채우기 위해 모이지 않는 날에도 자발적으로 연습했다. 회의는 항상 예정된 시간에 끝나는 법이 없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쳤다. 11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공연이 예정된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폐쇄되었다. 연습은 물론 공연도 불가능해졌다. 그동안 쌓아온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대안을 찾아냈다.


긴 회의 끝에, 공연 대신 각자 집에서 뮤지컬 넘버를 녹음하고 촬영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로 했다. 처음 계획과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우리의 열정은 그대로였다. 마이크와 카메라는 전문적이지 않았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햇빛을 조명 삼아, 휴대폰으로 녹음하며, 각자의 집에서 촬영한 장면을 이어붙여 갔다.

화면 캡처 2025-12-01 234636.png This is me 뮤직비디오


영상이 완성된 순간, 우리는 그 화면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며 감격했다. 그 영상은 단순한 영상 한 편이 아니었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며, 열정을 쏟아 만든 창작물이었다. 노래는 매끄럽지 않았지만, 처음보다 나아진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공연을 올리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꼈다. 우리가 얻은 것은 뮤지컬 영상 하나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용기,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었다.


누군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은하수 활동에 열심히 해? 이게 네 진로나 성적에 무슨 도움이 되는데?”


사실 뮤지컬은 내가 희망하는 진로 분야와 전혀 무관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좋으니까!”


입시를 준비하기도 바쁜 고등학교 시기에 은하수학교에 참여했다. 하지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던 내게 토요일 은하수학교는 숨구멍이 되어 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결과보다 가치있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 이유,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 일이 정말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깨달았다. 자치의 첫 번째 단추는 바로 ‘하고 싶은 욕구’라는 것을. 프로젝트는 구성원의 욕구에 기반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그것이 진정한 자치의 시작이다.


물론 하고 싶은 욕구만으로 프로젝트를 끝까지 지속하기는 어렵다. 중간중간 찾아오는 고비를 넘기려면 책무성이 필요하다. 뮤지컬을 만들려면 시나리오 작성, 넘버 개사, 소품 준비 등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해야 했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작업이 계속되었고, 밤늦도록 개인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던 이유는 각자에게 주어진 책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내가 맡은 일’을 책임지며, 끝까지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이것이 진정한 배움이 아닐까? 나는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획하고 주도하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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