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사랑하는 청소년 (2)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이름은 존재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이름을 부르는 순간, 대상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학교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학교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와 비전을 나타낸다. 학교의 상징, 교목, 교화를 의미있게 여기는 학생은 많지 않다. 이미 예전부터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자치학교의 청소년은 학교의 이름과 상징, 핵심가치를 직접 만든다.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할 때 비로소 주인의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가 지향할 가치를 토론하면서 추상적인 가치를 구체적으로 되돌아 볼 수 있다. 이름과 가치를 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생각이 반영된다는 점은 학교를 단순히 다니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인지 추진단 활동 중에 학교 이름을 정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청소년자치학교추진단의 워크숍에서 앞으로 청소년자치학교가 지향할 핵심가치와 비전, 운영방식, 그리고 학교 이름을 토론했다.
치킨집 사건 이후, 나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씀에 용기를 얻었다. 추진단 활동에도 과감하게 도전했다. 이끔이였기에 그동안 해본 적 없는 회의 진행도 열심히 시도했다. 학교 이름을 정하는 과제는 단순해 보였지만, 모두의 의견을 조율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기에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조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이름 정하기는 각 조별로 흩어져 후보를 제시하고, 전체 구성원의 동의를 얻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학교 이름은 예쁘면 좋겠어.”
“음, 밝고 긍정적인 느낌? 우리 학교의 철학도 담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확산적으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던 중, 무심코 던진 한마디.
“그럼 ‘은하수’는 어때?”
처음엔 단순히 이름이 예뻐서 던진 제안이었다. 하지만 곧 그 이름에 의미를 덧붙이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은하수? 별들이 모여 있는 거잖아. 그럼 우리 학생들도 저마다의 빛나는 별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맞아! 여기서 서로의 빛을 발견하고 더 빛나게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도 담을 수 있겠다.”
발표 시간이 되었다. 조원들이 준비한 다양한 이름이 발표되었다.
“늘푸른학교요. 우리 청소년의 미래가 항상 푸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청자학교요. 푸른 빛깔의 청자처럼 깊고 아름다운 의미를 가진 학교가 되었으면 해요.”
“우주학교요. 우리가 주인이 되는 학교니까요.”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긴장감이 스며들어 손에 땀이 배었다. 단순히 이름이 예뻐서라는 이유만으론 부족할 것 같아 순간적으로 살을 붙였다.
“우리 청소년은 모두 저마다의 빛을 지닌 별이에요. 이곳에서는 그 빛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별들이 모여 은하수를 이루듯, 우리도 함께 빛나는 청소년자치학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은하수학교’를 제안합니다.”
말을 마치자 뒤에서 지켜보던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내심 긴장이 풀렸지만, 전체 투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결과가 발표되었다.
‘은하수학교’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그렇게 인천청소년자치학교의 이름은 ‘은하수학교’로 결정되었다. 이름을 정하는 단순한 과정이라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모두가 마음을 모으고 학교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진지한 순간들이 녹아 있었다. '은하수학교'라는 이름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빛나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더 큰 꿈을 꾸겠다는 소망이 담겼다. 이후 은하수학교에서 추구할 핵심가치를 비전, 사랑, 연대, 주체성으로 결정했다. 이떄 세운 핵심가치와 비전은 마치 나침반처럼 은하수학교가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성찰 지표가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