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사랑하는 청소년 (4)
은하수학교는 특별했다. 프로젝트에 도전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점. 청소년들과 함께 회의하면서 은하수학교를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자치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었다. 그렇게 나의 토요일은 점점 은하수학교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어느새 1기 청소년 대표로 추천받았다. 청소년자치회의 투표를 거친 뒤 당선되었다.
‘첫 대표’라는 자리는 책임감이 막중했다. 처음이기에 더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모두가 만족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대표의 자리를 경험하며 고민도 많이 생겼다. 대표라는 직책이 생기고 나니 이전과 달리 자연스럽게 힘의 중심점이 생기는 게 느껴졌다. 내가 회의를 주최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매번 나를 중심으로 회의가 운영되었다. ‘대표님’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 불편했다. 나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아 불러준 호칭이지만, 그 호칭으로 인해 청소년 사이에 위계가 생기는 듯 했다.
학교 학생회는 소수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당연했다. 대표라는 자리는 특별한 권위와 위계를 상징했다. 마치 소수에게만 주어진 특권처럼 보였다. 그러나 은하수학교에서의 자치는 완전히 달랐다. 이곳에서 대표는 가장 앞서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구성원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나아가는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회의를 진행할수록 나에게 쏠리는 힘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만 대화가 시작되는 일이 반복됐다. 모두가 말없이 나만 바라보는 순간 속에서 진행자에게 회의의 권한이 집중되어 있음을 느꼈다. 이런 상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내가 중심에 서기보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리더에게는 권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은하수학교에서도 리더의 권위와 위계가 정말 필요한가?’
스스로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운영지원팀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내 고민을 이해하며 좋은 조언을 해주었다.
“머릿속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써서 나눠 보는 게 어때? 다른 사람과 머리를 맞대면 모으면 답이 보일 수도 있어.”
고민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나의 고민 뿐 아니라 다른 은하수 구성원도 공감하는 문제들이 많았다. 그렇게 다음 번에는 메모를 보며 더 이야기 해 보자고 하셨다. 그날부터 떠오르는 질문들을 차곡차곡 적어 나갔다. 볼편한 질문이기도 했다. 회의에서 말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자치에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평등 중 무엇을 더 중시해야 할까? 구성원이 지키지 않는 약속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 목록을 들고 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운영팀 선생님, 길잡이교사,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질문 하나하나가 대화의 주제가 되었고, 깊이 있는 토론으로 이어졌다. 불편한 질문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주제로 변했다. 자치를 한다는 건 결국 이렇게 토론하는 과정이었다.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것.
시간이 흐르며 공론장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표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목소리를 내야 했다. 자치회 내부에서부터 이런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회의 때마다 주제를 던지고, 모든 구성원이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처음엔 말이 적던 친구들도 점차 참여하기 시작했다. 회의장은 토론의 장이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나눈 불편한 질문은 집담회의 공동 토론 주제로 이어졌다. 작은 고민이 전체의 공론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청소년자치회 내에서도 조금씩 토론 문화도 싹트기 시작했다. 청소년 자치회에서는 단순히 그날의 안건만 나누고 끝나지 않고, 시간을 따로 내어 청소년끼리 은하수학교 자체에 관한 문제를 논의했다.
리더는 배우려는 태도와 고민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완벽한 리더가 아니었기에 함께 고민했다. 자연스럽게 함께 고민하는 토론하는 문화가 자치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말하고, 논의하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이를 통해 자치를 통한 배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책으로 배울 수 없는 민주주의의 실제를 체험했다. 성장하는 법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며, 책임을 나누는 과정. 이 모든 경험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지금 돌아보면, 은하수학교의 자치회 대표로 있었던 시간은 내 삶에서 중요한 배움의 시기였다.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첫 방법을 깨달았다. 내게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기록하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을 공동체에 던져 함께 의논하며 풀어가는 것.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건 나와 공동체 모두를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