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길잡이교사 (1)
길잡이교사의 눈으로 청소년을 바라볼 때면 늘 놀랍다. 청소년 주도성이 발현되는 순간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의 핵심은 청소년이 직접 기획부터 실행, 평가를 주도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청소년은 배움의 주인이 된다. 배움의 주인으로 거듭난 ‘은하수 연구소’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은하수 연구소’는 길잡이교사 된 후 처음으로 담당한 프로젝트다. 전국 자치배움터를 탐방하고, 자치를 정리하는 목표를 세웠다.
은하수연구소에서 다른 곳을 탐방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활동하는 회관 공간을 탐방했다. 탐방은 처음이라 쉽지 않았다. 출연자 섭외를 즉흥적으로 시도하고, 무엇을 질문할지 몰라 쩔쩔 매기도 했다. 탐방 후에 영상 녹화도 잘 안 되어서 남는 게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인터뷰였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오히려 다음번에 오늘 부족한 점을 보완하자고 말했다. 다음번에는 제대로 인터뷰와 진행을 연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깨달았다. 인터뷰를 하려면 질문을 구성하고, 카메라 작동방식도 배워야 했다. 각자 명확한 역할을 나눠야 했다.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시작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청소년을 부딪히면서 배운다. 해보면서 필요한 것을 알아차린다. 그 순간부터 진정한 기획이 시작된다.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는 기획-실행-평가의 단계를 거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기획이다. 기획은 완벽할 수 없다. 먼저 부딪혀보고 계속 부족한 부분을 수정 보완하는 것이다. 기획은 ‘인지’에서 시작된다.
길잡이교사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인지는 교사가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과 다르다. 주도하려면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탐방할 기관이나 취재 방법, 카메라 작동법을 알려줬다면 결과물은 괜찮게 나왔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청소년들의 흥미는 떨어졌을 것이다. 먼저 시도하고 실패해본 덕분에 주도성의 엔진이 켜졌다.
은하수연구소의 청소년들은 평소에 토론을 즐겨하거나, 여러 번의 탐방 경험이 있는 대단한 청소년들이 아니다. 공부보다 노는 것을 좋아하고, 학교에서는 잠도 자다는 청소년이다. 길잡이교사는 청소년이 먼저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부딪힐 수 있게 하며 주도성의 엔진을 켜주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직접 해보면서 배운다. 똑같은 교실에 앉아서 강의를 들을 때보다, 낯선 환경에서 친구들과 새로운 일을 시도해볼 때 눈이 밝게 빛난다. 그 순간이 배움의 주인이 되는 첫 단추다.
배움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필요를 인지하고 그 필요를 채우려는 과정이다. 실패 속에서 부족함을 발견하고, 그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한 기획-실행-평가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청소년들은 스스로 성장의 길을 찾아 나갔다. 그들이 보여준 변화는 나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배움의 여정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그들과 함께 배우며 깨달았다.
은하수 회관 탐방에서 얻은 교훈은 우리의 다음 도전을 이끄는 나침반이 되었다. 이번에는 서울에 있는 자치배움터 ‘다가치학교’로 탐방을 떠나기로 했다. 다가치학교는 서울에 새로 생긴 자치배움터였다.
탐방을 기획하는 일은 기존의 학교 현장학습과는 전혀 다르다. 학교의 현장학습은 정해진 일정과 프로그램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구조였다. 학생들은 준비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자치배움터 탐방은 달랐다. 탐방을 기획하는 과정 자체가 배움의 기회였다. 탐방 준비는 단순히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섭외부터 우리 손으로 해보자. 직접 통화도 하고, 일정도 잡고.”
그 말대로 청소년들은 손으로 전화를 걸어 일정을 조율했고, 궁금한 질문을 잔뜩 준비했다. 은하수학교와 다가치학교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주제별 토론회’도 기획했다. 행정적인 부분은 운영팀의 도움을 받았지만, 청소년들은 스스로 중심이 되어 움직인다는 사실을 뿌듯해 했다.
지난번의 부족함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철저히 준비했다. 특히 ‘청소년 토론회’에 가장 큰 에너지를 쏟았다. 다른 기관의 청소년들과 교류하는 장이었기에 기대가 컸다. 기획의 첫 단계는 역할 분담이었다. 촬영, 사회, 토론 등 토론회 구성과 각자의 욕구에 맞는 임무가 주어졌고, 중학생 A는 토론회 사회를 맡게 되었다. 처음으로 사회를 맡게 된 그는 설렘과 함께 불안을 드러냈다.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 있었지만, 동시에 잘해내고 싶은 강한 의지도 담겨 있었다.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일 저녁마다 삼삼오오 모인 팀원들과 카페에서 사회 진행을 연습했다. A가 준비한 스크립트를 읽으면 팀원들이 피드백을 해 줬다. 사회자 스킬을 찾아보며 사회를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진지했다. 팀원들 또한 그런 A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이 부분은 천천히 말해도 괜찮아.”
“여기서 한 박자 쉬면 청중들이 더 집중할 거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팀원들은 서로 돕기 위해 평일 시간을 내어 자발적으로 모였다. 프로젝트 구성원 간 관계가 두터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들 사이에 깊은 신뢰와 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토론회 당일. A는 긴장된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준비한 대로 한 문장 한 문장을 또렷하게 전달했다. 처음이라 작은 실수가 생겼지만, 놀라운 집중력으로 진행을 이끌었다. 청중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토론은 매끄럽게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토론회가 끝난 후, A는 만족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준비한 것만큼 잘하지 못한 것 같아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의 말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처음인데도 정말 잘했어. 부족함을 느낀 건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야. 이번 경험이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는 힘이 될 거야.”
A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눈빛에서 다짐과 열정을 보았다. 그는 분명 성장했다.
작은 성취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배움의 욕구는 시작된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들은 더 적극적으로 다음 탐방을 준비했고,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작은 성취의 경험이 결국 더 큰 도전을 주도하게 만든다고.
그렇다면 길잡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이끌어내고, 프로젝트가 단순한 경험을 넘어 깊이 있는 배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가치학교 탐방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자치배움터가 공통적으로 ‘학습자주도성’을 강조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개념은 단순하지 않았다. 탐방 준비 과정에서 문헌을 찾아보았지만,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배움을 찾아간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과거에 인천의 교사들과 함께했던 ‘미래학교를 준비하는 실천가들’이라는 전문적학습공동체 모임에서 학습자주도성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배움이 우리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토론을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도성은 무엇일까? 그리고 학습자주도성은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이젤패드를 펼치고 아이디어를 정리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말했다.
“주도성이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걸 말하는데, 학습자주도성은 그보다 더 책임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아무거나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만약 주도적으로 불지르기 같은 범죄를 배워서 저지른다면, 그건 학습자주도성이 아니겠죠. 배움에는 어떤 방향성과 가치가 있어야 하니까요.”
청소년들은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학습자주도성’의 본질에 다가갔다. 자유로운 사고와 깊은 성찰 속에서 이젤패드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적혔고, 그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마침내 한 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토론하는 우리도 꽤 학습자주도성을 가진 청소년들이네요!”
이 결론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문헌 속 개념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아간 과정 자체가 바로 학습자주도성을 실천하는 순간이었다.
길잡이 교사의 역할은 결코 정답을 가르치는 데 있지 않다. 대신 좋은 질문으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날의 토론은 나에게도 배움의 시간이었다. 학습자주도성이란 단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모두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