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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 전에 공동체를 지켜라

배움을 사랑하는 청소년 (5)

by 교육혁신가 이현우
두 사람 - 라이너 쿤체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 한 척의 배를. / 한 사람은 / 별을 알고 / 한 사람은 /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 배를 안내하고 /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 배를 안내한다.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 기억 속 바다는 / 언제나 파란색이리라.


자치하는 것은 두 사람이 항해하는 것과 같다. 항해는 함께하는 모험이다. 함께 노를 젓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목적지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는다면 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목적지와 다른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고 말 것이다. 자치도 마찬가지이다. 자치에서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나는 항해하면서 팀원과 노를 한 방향으로 젓지 못해 배가 기울어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2021년에 나는 ‘우리 세상 바루기’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바루기는 ‘삐뚤어지지 않게 바르게 하다’라는 뜻으로, 우리는 사회·교육개혁을 통해 우리 세상을 바루자는 목표를 세웠다. 첫 모임에서는 앞으로 집중적으로 다룰 주제를 정했다. ‘사회·교육문제’라고만 하면 너무 방대하기에 주제를 좁혀보기로 했다. 학생, 사회적 소수자, 노숙자, 지역갈등 등 다양한 주제가 나왔다. 긴 회의 끝에 첫 번째 주제는 ‘학생’으로 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학생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교육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강사를 초빙하여 ‘교육, 어떻게 바꿀까?’를 주제로 한 강의도 들었다. 정책 제안 활동에서 학생을 위한 3가지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화면 캡처 2025-12-02 000123.png 우리세상바루기 프로젝트 토론


마지막으로 인천시 관내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우리가 외치는 교육 이야기! 청소년 토로회’를 기획하였다. 학생들이 교육문제에 접근하고 논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학생들이 마음껏 토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우리는 표현하고 있는가?’, ‘우리는 함께하고 있는가?’, ‘우리는 행복한가?’, ‘우리는 삶의 힘이 자라는가?’, 이렇게 4가지 소주제를 잡았다. 방식은 줌을 활용해 온라인 월드카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기획하고 진행까지 하다 보니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모임이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없었기에 우리는 더 바쁘게 움직였다.

화면 캡처 2025-12-01 235637.png 토로회 포스터


그렇게 몇 달간 토로회를 준비하던 중 어느 날 저녁, 팀원 2명이 카톡을 보냈다. 프로젝트를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토로회를 준비하던 친구들이었는데 갑작스런 선언에 깜작 놀랐다. 나가려는 이유를 장문의 글로 정리해서 보내주었다. 본인들은 프로젝트에서 사회 문제 활동을 기대했는데 계속 교육 문제 활동만 진행한 것에 불만이 쌓였다고 말했다. 또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은 안 하고 비판과 토론에서 그치는 점을 지적했다. 개혁 보다는 불평을 늘어놓는 모습에 가깝다는 것이다. 처음 계획과 다르게 계속 쳐지는 프로젝트 진행 속도도 문제라고 했다.


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1학기에 먼저 학생을 주제로 한 활동을 하고 하고, 2학기에는 사회 분야 활동을 진행해보기로 했었는데 활동이 늦춰지면서 학생 주제 활동을 계속 끌고 갔다. 실천 지향적인 활동이 부족했던 것도 맞았다.


나는 우리 프로젝트가 참 잘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부족해도 각자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목표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옆의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목적만 생각하며 옆 친구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달려갔는지 모른다. ‘아쉬움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하는 후회가 남는다. 우리에게는 소통이 필요했다. 바쁜 준비 속에서도 잠시 멈춰서 서로를 돌아보는 소통의 시간이 필요했다.


노를 젓는 방향이 같지 않으면 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토로회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눠볼 시간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알고서도 멈추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옳다는 착각에, 양보하기 싫은 욕심에 계속 귀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주어진 공동체 조차 지키지 못하는데 어떻게 우리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자치할 때는 서로의 목표를 맞춰가야 한다. 개인의 목표와 공동체의 비전이 공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간중간 서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노를 젓는 방향이 어디인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목소리를 나누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없다. 자치에는 소통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바쁜 상황에서도 함께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 활동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준비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는지, 마음에 담아둔 말은 없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소통은 느려 보여도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함께 소통하며, 함께 노를 젓는 공동체를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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