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리밀리 Feb 06. 2024

서울대, 시험은 쳐봤다

나는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조교가 시험지를 나눠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안을 가득 매운 응시자들과 함께. 그리고 내 책상 위에 시험지가 놓이자 나는 그것을 빽빽하게 채워갔다. 점심시간, 나는 이곳에서 희영 후배를 만났다. 나이로는 나보다 위지만, 한 학번 후배였던 다소 족보가 꼬여버린 그녀 또한 이 학교 시험을 보러 온 것이다. 경쟁자라기보다는 반가운 지인으로 우리는 자리를 함께 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대개 거기서 거기다. 희영 후배도 나도. 우리가 방황하다 만난 곳은 결국 대학원 입학시험장인 것을 보면 말이다. 거기에 둘 다 죽을 둥, 살 둥 공부한 게 아니라 널널하게 그저 되는 대로 공부해서 시험을 보러 온 것이다. 합격은 운에 맡긴 채. 내가 그랬듯 그녀도 그랬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서로를 보며 마냥 웃었다. 우리 둘은 밥을 다 먹고 난 뒤 간식을 나눠 먹었다. 이상하게도 우린 서로의 근황을 건너 띈 채 바로 예전 얘기를 꺼냈다. 희영 후배가 입학했던 그 해 여름, 과 MT 때 생긴 전설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 과 학우들은 그닥 뭉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총원이 적으면 가족같이 지낼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과 엠티를 갈 때도 3, 4학년들은 임원들만 참석을 했고 그나마 2학년들은 더러 임원이 아닌데도 술먹고 밤새 놀고 싶은 애들 몇 명 덩달아 따라갈 정도였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1학년들은 엠티에 빠지지 않았다. 이게 마지막 엠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꺼낸 이야기는 그 날 밤 벌어진 역사 속 주인공 S에 대한 것이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지만 선배와 맞담배를 필 수 있는 배짱을 가졌던 S는 입학과 동시에 유명인이 되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당당하고 똑부러진 말투 하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날나리라 설명되던 그녀에게는 매력을 뛰어넘는 마력이 있던 게 분명했다. 심지어 나이가 지긋하시고 다소 보수적이셨던 교수님들조차 그녀를 귀애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가 사귀었던 남자는 그녀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여러 면에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모든 여자 후배들한테 찝쩍대고 다녔던 선배다. 그리고 열이면 열 가차 없이 차였다. 먼발치에서 선배가 이쪽으로 걸어오면 홍해 앞바다 갈라지듯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그런 그가 우리 과에서 가장 핫하고 인기 많은 신입생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세상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다른 의미에서 멋지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또 이 상황 속 어딘 가엔 ‘하필’이란 단어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S가 과엠티에 가니 그의 남자친구 또한 엠티에 따라왔다. 언제나 그러했듯 남자 선배는 버릇처럼 취기가 오르자 여자에게 들이댔다. 하지만 이제 그 여자는 S 한 명에 국한 되었으니 그의 그런 추잡스런 행동도 사랑의 표현으로 승화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날은 그것은 사랑을 지나친 사건이 되어버렸다. 


엠티는 원래 밤을 새라고 있는 건데, 생각보다 놀 줄 모르는 1학년 아이들이 그렇게 엠티를 파장으로 만들었다. 자정을 넘어서자 하나 둘 잠을 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2학년 동기들은 쌩쌩한 체력을 잠으로 낭비하는 일 없이 계속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물론 ASMR처럼 조용히. 그 당시 나는 남자들의 군대 축구 무용담까지도 낄 수 있는 수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쉴 틈 없이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 다섯 시 반을 맞았다. 동이 틀 무렵, 커튼 뒤에서 잠을 자고 있던 동기 태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불장이 따로 없어 커텐을 문으로 삼고 그 뒤에 이불을 넣어두는 좁은 공간에서 잠이 들었던 태영이가 우리에게 말해도 될지 말지 고민하는 표정과 달리 소곤대며 말을 꺼냈다. 지금 커텐 뒤에 S와 그의 남친이 전라로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영이가 넋이 나갔던 표정에 전염이라도 된 듯 똑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후배들이 알기 전에 자리를 수습해야겠다는 조금은 어른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태영이와 혜규만 현장에 남아 사태를 잘 정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서둘러 대부분의 2학년 동기들은 자리를 조용히 떴다. 아침도 먹지 않은 채 자리를 나서는 건 쉽지 않은데 그때의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는 이날 밤 일을 2학년 대여섯 명만이 알고 있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그 일은 두고두고 1학년 사이에서도 회자가 되었다. 우리들 중에 가장 먼저 잠이 들었던 태영이가 실은 그 날 밤 커튼 뒤에서 났던 모든 소리를 다 들었다는 디테일까지도. 심지어 침이 입안에 고이는데 꼴깍 삼키는 소리가 날까 두려워 침을 입밖으로 질질 흘려 보냈다는 태영이스런 유머까지 보태져 있었다. 하기사 어쩌면 그런 대형 사고가 비밀 속에 봉인 되어 있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파격적인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꺼내 놓았던 희영 후배는 그렇게 과 전설이 되어버린 S를 감싸는 변론으로 마무리했다. S는 너무도 괜찮은 아이인데 그런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편견 속에 갇혀 버려 속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은 나에게도 설득력 있게 전해졌는지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알몸으로 발견된 남사스런 S가 아닌 그 사건으로 인해 진가가 가려진 안타까운 S로 기억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시작된 구술시험은 원통 박스에 담겨져 있는 문제 중 하나를 뽑아 그것을 읽고 답을 말하는 방식이었다. 1번으로 시험장에 들어간 나는 고동치는 심장이 손의 진동을 일으키고 있던 그때 손에 최대한 힘을 주어 떨림을 줄게 하고 상자 안에서 문제 하나를 골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마구 터트렸다. 종교가 없던 나는 입시 시험 중에 신의 은총을 입은 것처럼 방언을 쏟아낸 것이다. 교수들도 나의 이런 상황이 안스러웠는지 아주 침착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다른 문제를 골라서 다시 답하라고 하셨다. 나는 또 하나의 문제를 뽑았다. 그리고는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 때 교실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나의 뇌 작용은 내 정신건강을 위해 일종의 보호 작용처럼 단기기억상실의 방법을 취한 것 같았다. 그렇게 통째로 뜯겨나간 기억 다음에 붙여진 선명한 기억은 내가 학교 벤치에 앉아 혼자 엉엉 울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리도 멍청하고 무능한 거지?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설 자리를 찾아내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후 나는 설하에게 전화를 했다. 3개월의 시간을 투자했던 나의 결과에 대해 궁금해 할 나의 연인에게... 나는

“아 짜증나. 집이나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고 덤덤히 말했다. 설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 잠을 자고 있던 나를 깨운 건 동기 정기의 전화였다. 내가 대학원 시험을 본 건 어떻게 알았는지 당락여부를 다짜고짜 물어보는 것이었다. 

“야! 이은영! 붙었냐?”

“떨어졌어.”

“걱정 마! 내가 대신 복수해줄게.”

“뭔 소리야?”

“내가 너 대신 붙어주겠다고”

얘는 또 뭔 4차원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 있는 걸까? 짜증이 올라오는 순간 나는

“야. 너 헛소리 하지 말고 돈이나 갚아.”

“무슨 돈?”
 “지난 번 화물터미널에서 나한테 전화해서 집에 갈 차비 없다고 만원만 가지고 나오라고 했지? 갚겠다고.”

“아. 그걸 아직도 안 까먹고 있었냐? 너도 참 대단하다.”

“이건 또 뭔 소리야. 대단하다니? 아니다. 너.. 그냥 그거 먹고 떨어져라. 갚지마.”

정기는 우리 아빠의 고향인 충청도 홍성 출신 아이다. 아빠와 동향 출신인 아이는 처음 봐서 그냥 좀 말 몇 번 섞었다가 엮인 인연인데 얘는 친하지도 않으면서 한 번씩 인생 속으로 훅 들어오곤 한다. 그러고는 스크래치를 내고 훅 빠지는 경향이 좀 있다. 어찌됐건 이 일로 이 아이와 나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그것을 나는 별거지 같다고 표현을 한다. 


그 뒤로 나는 별다른 스케줄 없이 집에서 칩거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소멸의 개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하루 이틀, 통장에 모아놓은 돈도, 한 푼 두 푼 사라져갔다. 대학원에 붙으면 학벌을 업그레이드 하고 내가 뭐라도 된 듯이 자랑도 할 수 있고 이 레드 카펫만 밟고 나가면 그 끝에는 부와 명예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했던 상상, 내가 품은 희망은 그랬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며 객체로서의 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말들이 헛소리인 것 마냥 느껴졌다. 이렇게 자의식에 위안을 주는 말은 내 상황 속에서는 인지적 부조화를 가중시킬 뿐이었다. 갑자기 시작된 삼차 신경통으로 뒤통수는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강렬한 통증이 1분간 지속됐다. 충격에서 벗어난 나는 잉여인간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옹호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능을 시급히 해야만 했고 나는 이를 행동으로 이어야만 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전 03화 취업이란 말이 거창했던 내 첫 직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