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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Jan 18. 2024

전재산이 사라지는 중

축축한 어둠의 혀가 심장을 한웅큼 핥고 간 온기 탓일까? 나는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도 눈물샘의 바닥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농담처럼 인식했다.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나는 매일 같이 빚이 청산된 후의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소녀가 켰던 성냥의 작은 불빛처럼 그 찰나의 행복이 매섭게 사라질 때, 차가운 슬픔이 허락되지 않는 눈폭풍 같이 쏟아져 누워 있던 침대가 45도 각도로 천천히 기울더니 삽시간에 지구를 뒤집어 놓았다. 


남편이 없는 세상을 여는 문 소리가 그 울림을 타고 귓가로 끊임없이 이어져 내렸다. 나의 무의식을 타고 넘어 올라온 손을 의식이 건네받더니 이내 그를 모로 세워 놓고 냉큼 털어냈다. 거대한 세계가 티끌이 되어 떨어져 나가는 순간, 남편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났다. 이건 죽음이 아니라 해방의 쾌재임을 방금 깨달았다. 그래, 조금 더 진작이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은 덜어냈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나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잘라도 잘라내도 나의 생태를 파괴하는 붉은 손이 재생하는 불가사리처럼 말이다. 하여 그는 벌컥 벌컥 뛰고 있는 심장에도 그림자 같이 끈적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역동하는 선혈 속에 흡착해버린 탓에 ‘그’라는 파편은 더 크게 응축된 것처럼 느껴졌다. 고통이 더욱 아프게 전해져 올 때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눈물 안에도 모든 고통이 맺혀져 나는 그 시간 속으로 웅크려버렸다. 끝도 없는 아픔이 파고드는 와중에도 그는 격하게 그리고 감히 내게 달라붙었다. 


내가 미국으로 이사를 온 건 8년 전 가을,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나흘 앞 뒀던 날이었다. 이사와 동시에 남편은 지하실에 터를 잡았고 나는 2층 안방에서, 마주칠 일 없는 동선을 그리면서도 함께 살았다. 존재감 없는 동거인으로서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얼굴조차 볼 일도 없는 남이 되어만 갔다. 이런 일상을 그려나가던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한 장만 넘기면 결혼기념일이 나타나는 페이지가 달력 맨 앞장에 멈춰져 있을 때 남편이 전 재산을 탕진했단 말을 전해 들었던 것이다. 


모든 흔적이 검은 그림자 속으로 자취를 감추도록 나는 사라지려 했다. 더 이상 내가 세상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 그리하여 나의 부재가 남편에게 공격이 되고 그 끝은 사무치는 아픔이 되어 남도록 남편한테 나를 없애고 싶었다. 그렇게 그가 나를 도저히 찾을 수 없도록.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마주하기조차 힘든, 부인할 수조차 없는 가난이 뿌리부터 내 그림자를 타고 올라 무능으로 변태했고 그나마 가난이 적게 드리워진 면적에 발을 딛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을 때 그곳엔 남편이 있었다. 가난에 점령당해버린 나는 홀로 설 수조차 없었다. 


내가 그렇게 남편이라는 공간 속에 다시금 갇혀 버렸을 때 나의 모든 긍정은 곧 부정이 되어 돌아왔다. 그 시간의 조각에서 나는 다시 부정의 부정을 하고 싶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절망적 현실에서도 온 힘을 다해 이를 정신적으로 유예시켜나갔다. 그러는 동안 힘은 온몸을 빠져나가 무기력을 출산했고 번아웃은 시발됐다. 날에 하루를 더해 파국으로 가는 고통 속에 수많은 우울은 그리고 또한 불행은 나와 눈을 맞췄고 숱한 한숨들은 내 눈물과 입을 포겠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각성했다. 분쇄되는 나의 삶의 한 조각 파편이 남편의 가슴 한 구석에 깊숙이 박히도록. 남편이 내 삶에 그랬던 것처럼 그 상처 또한 남은 네 인생 속의 저주가 되었으면 했다. 


남편이 망했다는 사실은 나를 흑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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