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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25. 2022

부모가 된다는 것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

저희 어머니는 십수년 동안 형님 방에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라는, 작은 액자를 걸어두셨습니다.  청소년기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형님과 저는 액자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십대를 마감하였고, 이십대에는 밖으로 싸돌아다니기 바쁘다가, 삼십대에는 결혼해서 분가해 버렸지요.  

그렇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요상한 것이,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액자인데도 항상 그 내용만은 마치 익숙한 사진을 보는 것처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마침내 저도 아들을 낳고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이제서야 어머니가 어떠한 마음으로 저 액자를 걸어두셨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되어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쉬워 보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키우는 탓에 '누구나 하는 일'로 치부되기 십상이지만, 막상 내가 하려고 하면 세상에서 이렇게 복잡하고 세심한 기술과 감정을 요하는 일이 없습니다.  아이 주변에 있는 모든 변수를 통제하기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어찌어찌하여 아이에게 완벽에 가까운 환경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아이가 엇나갈 가능성은 당연히 존재합니다.  혹시나 자식이 잘못된 길을 선택하거나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사람이 된다면, 그 부모는 평생을 자책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부모는 그 무엇보다도 자식이 잘 되기를, 건강하고 올바른 성인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설사 그것이 미신에 불과하거나 비용 대비 효과가 형편없이 낮다 할지라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장기를 팔아서라도 해 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우리나라에서 맥아더 장군이 이렇게 칭송받는지, 그리고 저 기도문이 진짜 맥아더 장군이 한 기도를 옮긴 것인지 강한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의문과는 별개로, 그리고 종교적인 논란이나 함의를 떠나서, 이 기도문을 아들 방에 걸어두시고 한 평생을 기도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주여, 저의 자식이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자신의 약함을 알 수 있을 만큼 강하게 하시고
두려울 때 자신을 직면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하게 하시고
정직한 패배에 당당하고 굴하지 않으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소원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이며
주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본임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오니
그를 편하고 안락한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의 긴장과 자극 속으로 이끌어 주소서.
폭풍 속에서 의연히 서 있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실패한 이들에 대한 연민을 알게 하소서.

마음이 깨끗하고 목표가 높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남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
웃는 법을 알면서도 우는 법 또한 잊지 않는 사람
미래로 나아가지만 과거 또한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뤄진 후에도 
넉넉한 유머감각을 더해 주셔서
늘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너무 심각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그에게 겸손함을 주셔서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함에 있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늘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아버지인 저는 감히
“내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속삭일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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