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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23. 2022

일종의 고백

이영훈을 아시나요?

최근 지인의 추천으로 '나의 해방일기'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제가 애정해 마지않던 '나의 아저씨'를 집필한 박해영 작가의 작품입니다.  아직 전 회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의 느낌은 '구관이 명관이다'네요.  물론 아이유에 대한 제 팬심이 개입된 평가일 수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나의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제 가슴을 묵직하게 때리는 한 방이 있었으니, 바로 드라마 배경에서 흘러나오던 '일종의 고백'이었습니다(사실 오랜만에 들어서 제목을 '순간의 진심'으로 착각했다는). 


https://www.youtube.com/watch?v=CEYUFaEIioI


인디음악에 푹 빠져서 홍대를 전전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다사나이와 말달리자가 홍대 클럽씬을 한번 뒤집어 놓았지만 2세대 인디밴드 시대에 화끈한 불을 지피기에는 지구력이 살짝 부족했고, 그 틈새를 비집고 어쿠스틱 라이브가 (본의 아니게) 데이트 시장을 공략하게 되며 주목을 받던 시기.  애인은 없었지만 음악적 감수성은 풍부했던 그 시기에 소규모 라이브 공연을 찾아 홍대와 대학로를 헤매고 다녔더랬죠.  


그리고 당시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이아립이, 그리고 그녀(및 이호석의) 밴드인 하와이가 있었습니다.  네, 영화 버스정류장에서 루시드폴의 반주에 맞춰 소희의 테마인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를 불렀던, 그 이아립이요. 


하지만 오늘 이 글의 주인공은 이아립이나 하와이가 아닙니다.  물론 그녀는 너무나 매력적인 아티스트입니다만, 오늘은 하와이의 공연장에서 본, 이영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011년이었을 겁니다.  이아립도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시기이니 이영훈은 더더욱 유명하지 않았던 때였지요.  당시 어쿠스틱 라이브를 자주 열던 오뙤르(AUTEUR)에서 하와이의 소규모 공연이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혼자 음악 들으러 다니던 것이 너무나 좋았던 저는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려 입장했는데, 공연은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하는 공연이었고, 하와이에 앞서 나온 아티스트가 이영훈이었지요. 


이영훈에 대한 제 첫인상은 솔직히, '지쳐 보인다'였습니다.  하와이 공연의 관객들이 노브레인이나 크라잉넛의 관객과는 성향이 다른 것이 사실이지만,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볼 생각에 들떠 있던 차에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앉아서 통기타를 퉁기며 노래만 하는 이영훈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관객들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아니었어요.  그 당시 저는 상당히 지쳐 있었고,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고, 모든 일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 이영훈이 '일종의 고백'을 불러버린 겁니다.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또 어떤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 없으니 나를 좀 안아 줬으면 다 사라져 버릴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날 사랑한다고

지난 사랑을 돌아보면 언제나 부끄러운 이유 중 하나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했다는 느낌보다는 그 사람의 일부를 구성하는 작은 습관이나 취향 같은 것에 '취해'서 자신의 감정을 속이며 '순간의 진심'에 불과한 말로만 사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외로운 날에는 누구라도 좀 나를 안아 줬으면, 빈말이라도 좋으니까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했던 나날도 참 많았지요.  제대로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사랑은 받고 싶은, 이기적이고 나약한 사람이었던(물론 현재진행형입니다만) 제 마음을 날카로운 칼로 도려내어 도마 위에 펼쳐놓은 듯한 가사였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조금은 덜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하고요.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이 노래를 같이 들으면서 일종의 고백 정도는 할 수 있는 용기는 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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