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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25. 2022

반말하는 사람들

예의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저는 나이에 비해 (비교적) 어려보이는 편입니다. 이게 조금 웃긴 것이, 학창시절에는 노안이라고, 중년의 회사원 같다고 놀림받기 일쑤였거든요.  인간만사 옹지마라더니, 세월이 흘러 친구들이 하나둘씩 머리가 하얘지거나 벗겨지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게 되자, 비로소 학생틱한 얼굴로 남아있는 제가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더군요.


그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에 비해 비교적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인지,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반말을 듣습니다.  두세 번 이상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반말이 거의 디폴트 옵션이고, 초면에도 은근슬쩍 말이 짧아진다던가, 아예 대놓고 반말로 일관하다가 나중에 실제 나이가 자신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자 머쓱해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일상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저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쌍욕을 삼키곤 합니다.


사실 그다지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다수의 사람들이 '손윗사람이 반말하는 것이 뭐 대수인가' 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저는 유난하게도, 반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특히 초면에 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렇게도 고깝습니다.  


생각건대 이런 불편한 마음은, 존대를 한다는 행위가 사회적 위계질서에서 비롯되는 기계적 어법이 아니라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여기는 제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혹은 어려서부터 강력한 역할모델 없이 자아를 형성해야 했던 탓에 권위에 순응하기 싫어하는 반항아적 기질이 깊게 자리잡았고, 이에 반말을 위시하여 권위를 내세우는 인간들을 본능적으로 경멸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전문성을 극단적으로 발휘해야 하는 직군에 종사하는 이에게 생물학적 연령만을 내세워 반말을 남발하는 것은 업무 수행에 있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직업적 권위에 도전하는 시도로 여겨지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반발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저는 업무로 만난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 누구라도, 하다못해 스무 살 어린 신입사원이라도 반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나 호칭으로 위계질서를 정하고, 그러한 위계질서로 관계를 정의하게 되는 사회는, 제 입장에서는 건전해 보이지 않습니다.  설령 반말이 친근함의 표시로 사용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친근함은 덜 일방적이고 더 호혜적인 방식(예컨대 소고기를 백만원어치 사준다거나)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애초에 돈 한푼 쓰지 않으면서 형 누나 노릇하려는 시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가요.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직책에 '님'자를 붙이지 않는 것도 일종의 반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상대방을 '김 차장' '이 팀장'으로 부를 거라면, 상대방이 자신을 '박 이사' '최 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제발, 서로 간에 예의 좀 지킵시다.  아니면 다 같이 헤이 브로 왓썹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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