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방학이라 바쁘다며 소홀하더니 휴가 받아 집에 왔다. 상전이 따로 없다. 먹고 싶은 걸 물어봐도 많이 먹지도 않는데 이것 해주랴 저것 해줄까 모시는 입장이다 보니 까다롭기 이만저만 아니다. 대학원생인 딸은 방학이라도 연구소에서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좀처럼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하리. 볼 때마다 비위 맞추기 바쁘다.
뭔 일이신지 선뜻 데이트를 제안한다. 오늘은 엄마랑 시간 보내신다면서 뭘 하고 싶냐 한다. 노래방 가고 싶다고 외쳤더니 그게 그렇게 하고 싶었냐고 묻는다. 자녀들이랑 노래방을 가본 적 있으신가? 작년 가을 식구들과 강화도 놀러 간 적 있는데 펜션에 노래방이 있었다. 딱히 뭐 할 것도 없고 해서 노래방기계를 켰는데 난 아이들이 그렇게 기막히게 잘 부르고 흥이 많은 줄 몰랐다. 들어는 봤지만 가사 모르는 노래부터 신나는 곡, 팝송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노는 것을 보면서 놀라고 신기했다.
자녀들이랑 같이 놀고 싶을 땐 노래방 강추한다. 근데 자녀 입장에선 꼭 재미있지 않을 순 있겠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그들이 모를 수도 있고 지나간 노래일 테니 되도록이면 신곡으로, 자녀들이 알만 한 곡으로 선곡하시길. 신촌 살면서 딸과 단둘이 코인노래방은 처음 가봤다. 요즘은 직원 없이도 쑥 들어가서 빈방에서 결재하고 선택하며 노래 부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신세계다. 기기가 얼마나 좋은지 펜션의 노래방은 구식이었다. 마이크며 화면, 소리의 대응이 남다르게 스마트하더라.
신나게 노래 몇 곡 부르고 딸이 부르는 노래와 같이 즐기는 시간이 스트레스야 저리 가라였다. 몇 곡 부르고 나니 출출해져 태국 음식을 먹으러 갔다. 난 이곳에 태국 음식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쌀국수와 팟타이를 시켰는데 베트남 쌀국수는 순한 반면 타이 쌀국수는 진한 팔각의 향이 우러나는 찐한 향신료의 맛이다. 고수도 듬뿍 넣어줘 진하고 검은 국물에 소고기, 숙주, 가는 쌀국수 면이 착 감겼다. 팟타이도 새우와 숙주, 야채와 쌀국수의 볶음과 달콤 짭짤함이 잘 어우러졌다. 신세계였다고 할까.
아마 누구랑 같이 먹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그동안 바쁘다고 집에 오지 못하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속셈이었겠지. 모른 척 껌딱지처럼 쫙 붙어있는 딸이 오늘따라 정겹다. 원하는 기본 정장식 재킷이 하나 필요하다고 해서 백화점으로 갔으나 폐점 시간이 가까웠고 원하는 색상이 없어서 휙 둘러보곤 바로 나와야 했다. 스티커 사진 찍자고 해 포토샵에 들어가 보니 배경, 원하는 프레임, 색 등을 선택하고 사진 개수를 정해 결재하면 된다. 사진 찍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이쁘게 입고 올 걸 하는 맘이 들었지만 이마저도 재미있는 경험 아닌가. 인쇄된 사진을 받고 선 아이스크림 사들고 집에 돌아오니 하루가 금방 저물었다.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짧고 반갑고 아쉽다. 점점 더 나에게 허락하는 시간이 줄어들 테니 지금을 온전히 즐겨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어느새 저녁이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전보다 낮이 더 길어진 느낌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붙잡고 싶지만 이렇게라도 지낼 수 있다는 게 행복이다. 그래, 오래도록 엄마 껌딱지 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