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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y 03. 2024

놀라지 않을 이야기

"엄마, 저예요, 놀라지 마세요."


아들이 다쳤다. 퇴근하면서 전동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턱에 걸려 몸이 날아갔단다. 자세히 말하진 않았지만 다리에 선홍색 피가 붉게 뿜어져 나오자 길 가던 사람이 "응급 불러드릴까요?" 묻고는 전화를 해줬단다. 송도 근처 조금 떨어진 응급센터서 검사와 진료를 하고 간단하지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얘기만 들어선 골절이나 큰 사고는 아닌 듯했지만 돌덩이가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얼른 차비를 하고 나섰다. 운전을 하면서 지난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초등 졸업을 하고 중학교 생활을 시작하기 전 학원을 가다 눈길에 넘어졌다. 한창 "뚝배기 한 그릇 하실래요?" 하는 할리의 광고가 전파를 타고 보기만 해도 늘 흥겨웠던 아들에게 힘겨운 나날의 시작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넘어졌는데 차 밑에 들어갔다면서 나올 수 없다고 도와달라 했다. 집에서 막 뛰어나가 아들이 어디 있는지 찾았다. 살짝 언덕에 걸쳐 있던 차 밑에 들어간 아들을 찾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119를 불렀으나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혀 40여 분 넘게 걸린다고 해 어렵게 택시를 타고 근처 정형외과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중학교 입학식을 하는 동안 뒤에서 목발을 짚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다. 왼쪽 무릎 밑 정강이뼈 골절로 다리 피부 안팎에 핀을 두 개씩 박고 매일 드레싱을 하러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때가 자꾸 떠올라 슬며시 마음이 아려왔다. 중학생이 되는 남자아이들은 뼈가 아직 야물지 못해 잘 골절되고 성장기라 다치기 쉽다. 부산하거나 지나치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성격은 아니지만 늘 재미있고 농담 좋아하는 아들에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꽤 답답했을 것이다. 어린애 티를 아직 벗어내지도 못한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는데.


그때도 왼쪽 다리였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다리뼈가 얼룩덜룩한 얼룩처럼 색깔이 다른 게 보였다. 얼른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뼈에 암이 생긴 것 같다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제 14살인데. 동네 내과 선생님께 부탁해 병원 예약을 잡았다. 기다리는 1주일이 일 년처럼 피가 마르고 잠이 오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했으니까. 지긋이 나이 드신 선생님은 사진을 보더니 이것 때문에 왔냐면서 여러 사진을 보여주고 이분들은 암이 아니라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니 괜찮다고 했다. 진료를 하더니 다리 핀 박은 곳에 염증이 생겼다며 염증이 뼈로 전이돼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아들은 다리에 암이 아니라 염증이 생겨 수술을 받고 보름 가량 입원을 했다. 뼈에 염증이 생기면 잘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항생제를 오래 먹어야 다. 매일 가까운 내과에서 드레싱과 염증 치료를 했고 주일엔 대학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했다. 그렇게 3개월을 꼬박 간에 좋지 않은 강한 약들로 치료하면서 버텼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목발을 벗어났을 무렵 어느 가을날 학교서 전화가 왔다. 수업 시간에 운동을 하다 발을 잘못 디뎌 발목을 다쳤다 했다. 병원에 연락을 하고선 아이를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얼마나 억울한지 울기만 했다. 인대가 늘어나는 일이 한 번 더 반복되었지만 사람이란 게 그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든 살기 마련이다.


그렇게 자꾸 다치기를 반복했지만 건강하게 자라 잔병치레는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어쩌다 다친 곳이 왼쪽 상처 윗부분이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사진을 보여주는데 무릎 밑 중간쯤 되는 곳 근육이 송곳으로 찌른 듯 구멍이 났다. 어떻게 저렇게 다쳤을까 싶은 게 덩치 큰 아들이 아기처럼 얌전히 누워있으니 그렇게 안 됐을 수 없다. 연신 미안하다며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마음이 아프다. 아들은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라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줄 알지만 그래도 아픈 상처 앞엔 아이나 다름없다.


코로나 이후지만 아직도 상급병원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면회시간이 있다.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보호병실이라 그런지 면회도 쉽지 않다. 수술하는 동안 기다리며 아무 일 없이 깨끗하게, 신경이나 근육이 많이 다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다리가 퉁퉁 부어 내일 퇴원이라는 말은 쏙 들어가고 경과를 보잔다. 상처를 보니 생각보다 깊었단다.


사람 일이란 게 하루 아무 일 없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왜 매일 새로운 사건 사고가 생기는 것일까. 어쩌면 지금의 이런 잔잔한 사고들이 나중에 더 큰 복으로 내리는 건 아닌지, 지금의 화가 더 큰 재앙을 막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자기가 가진 실력보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간 친구 녀석이 자기의 운을 다 쓴 것 같다면서 좋아했던 게 생각난다. 어찌 대학이 자기 운의 가장 큰 것일까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니 하는 소리겠지. 내 기운을 다 가져다 쓰고 싶은 게 어디 한 개뿐이던가. 목숨이, 삶이, 생활이 그리고 자식에 관한 모든 일이 얼마만큼 커다랗고 가늠할 수 없는 일인데.


지금 난 그런 운을 다 사용하지 못할지라도 아이의 건강만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 밤 건강하게 잠들고 흉터 없이, 아니 작게라도 빨리 아물고 회복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자기 몫을 다 해내는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할 테니. 사랑하는 아들의 뺨을 살짝 매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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