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엄마 생신
치과 정규 검진 일이다. 치과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작년 치료했던 치아를 이제 붙여야 한다고 했다. 난 이미 치료가 다 끝나 정규 검진인 줄 알았는데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니.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언제였는지 물으니 시월 말이라고 한다. 그때 몸이 힘들어 더 이상 치료 못하겠다고 한 게 생각났다.
의사가 와서 기록이 누락됐는지 아님마저 치료가 필요한지 봐준다고 했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고 얼굴엔 천을 덮고 지시대로 입 벌리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벌써 시간이 흘렀구나. 며칠 뒤면 엄마 생신이 다가온다. 어김없이 시간은 가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데 이젠 엄마가 안 계신다. 이제야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나 보다.
원망도 하고 미워하고 부딪히던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눈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 벌리고 치아를 붙이는 와중에 왜 뜬금없이 눈물이 났을까? 가끔 그렇게 이유 없이 서럽고 눈물 마르지 않는 날이 있다 하더니 아마 그게 오늘이었나. 친구가 매번 어버이날이 되면 결혼 날짜 받아 든 채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마음이 울적하고 시샘이 났다고 했다. 친정엄마는 볼 수도 없는데 시부모님을 위해 밥 짓고 어버이날을 챙겨야 했던 시절이 떠올라 남편과 참 무던히도 싸웠다면서. 이제야 조금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뜬금없이 그냥 눈물이 났다. 지독히 그립고 눈물샘이 막힌 것도 아닌데.
봄날이 오는지 하늘은 더없이 맑고 구름 한 점 없다. 이런 날 치과 와서 입 벌리고 치료하며 눈물바람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엄마의 섬망이 더해지고 나를 오해해 집 밖으로 내쳤을 때도 그랬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억울한 마음 가득 담아 무던히도 원망을 했다. 저혈당으로 쓰러진 채 병원에 입원해 계신 동안 엄마의 손발이 되어주지 못했던 시간을 자책했지만 한편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후회하는 마음 가지지 않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으니까.
생과 사의 수많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했고 숨이 스러지는 사람은 그렇게 가는구나.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흐르는데 지독히 더웠던 여름 나절 시간이 떠올랐다. 암만 그래도 조금은 속상하고 가슴 아픈 일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조금씩 무뎌지고 견뎌지는 것인가 보다.
꽃이라도 한 송이 들고 달려갈 데가 있다는 건 매번 나를 울린다. 가끔은 찾아가고 싶은 데가 있다는 말이 그냥 한말은 아니다. 작년 생신 때 쫓겨나 울며 나를 서글프게 했던 게 떠올랐다. 아파서 그랬겠지 하다가도 사람인 나는 서운함을 감출 순 없었으니까. 사람은 열 번 잘해준 것보다 한번 서운한 게 오래가는 법이다. 아무리 잘해줘도 한 번의 섭섭함이 그 많은 걸 감춰버리니까. 사람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 이번 생신엔 엄마에게 가봐야겠다. 곧 봄이 찾아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