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떨어지기
가을에 입을 블라우스 두 개를 완성하니 마음이 흡족하다. 하나는 민트색 바탕에 작은 검정 물방울무늬가 다른 하나는 베이지색 바탕에 세로로 가는 갈색 줄무늬가 새겨져 있다. 모두 면 소재라 맨살에 닿는 감촉이 산뜻하고 편안하다.
“이 옷 제가 만들었어요.”
“어머 옷도 만들 줄 알아?”
“어떻게 옷을 다 만들어?”
이런 말들은 나를 들뜨게 하여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나만의 몸짓으로 흔들거리며 흥흥거린다. 칭찬을 들은 고래가 춤을 춘다면 나와 같을까?
옷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아마 10년 전쯤인 듯하다. 직업 특성상 주기적으로 근무지를 바꾸어야 했고 그 해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젊어선 근무지가 바뀌는 것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는데 살아온 세월이 쌓이니 낯선 근무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적응하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옷 만들어 볼래요?”
그렇게 몇몇이 사내 동아리처럼 근무 시간 끝나고 한두 시간을 할애하여 잠옷 바지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낯섦의 시간이 짧아져 새로운 근무지에서의 생활이 편해져 갔다. 잠옷 바지와 파우치 몇 개로 의기투합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취향을 쫓아갔다. 나와 뜻이 맞는 친구는 옷을 주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은 가방을 만들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니 취미를 같이한 사람들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거나 몇 번의 근무지 변경으로 연락이 어려워졌다. IT 기기의 발달로 물리적 공간의 거리감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시대를 초월해 적용되는 진리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하지만 고물 재봉틀 한 대로 시작된 나의 옷 만들기 취미는 늘어난 2대의 재봉틀과 함께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아쉬움보다 일상의 새로움을 찾는 즐거움이 더하다.
편편한 천 쪼가리를 자르고 꿰매는 과정을 반복하면 재킷, 스커트, 바지 등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갖가지 모양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이 참으로 신통하다. 감히 미술가들의 작품과 견줄 수 없지만 내게는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게다가 그 옷을 입었을 때 지인들에게서 받는 관심과 칭찬은 묘한 중독이 있어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재봉질하는 시간이 갈수록 힘겨워진다. 어깨는 아프고 눈은 침침하여 실 꿰기도 어렵다. 하지만 옷을 만드는 모든 시간은 단순한 취미로 간주해 버리기에는 큰 의미와 성찰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