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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Jan 11. 2024

취미의 발견 #2

한 발짝 떨어지

  만들고 싶은 옷을 결정하면 적당한 옷감을 고르고 그 위에 본을 대고 그린다. 본 대로 잘려진 조각들을 봉제하여 옷을 완성하기까지 다른 것에는 신경을 분산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뎌지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고등학교 재학 중일 때 이들에게 향하는 관심의 추를 약간은 덜 수 있었고, 이것은 매우 큰 장점이 되었다.     


  새로운 취미를 가까이하기 전에는 그들의 고교 시절 내내 주기적으로 치루는 모의고사의 점수에 따라 나의 감정의 기복이 심하게 출렁거렸다. 성적이 올라가면 더 기뻐했고 그와 반대인 경우는 화가 나서 추궁하고 닦달했다. 당사자가 더 힘들었을 텐데, 옆에서 지켜보고 믿어주기보다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를 궁지로 내모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늘 언쟁을 벌이게 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하고 참 잘못한 일이다.  

    

  옷을 만들면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녀석을 보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점수보다 건강이 염려되었고 까칠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안쓰러움이 앞섰다. 두 아이 모두 재수라는 나름의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할 일을 해나갔다. 초조하고 예민해지는 시간을 감정의 큰 기복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취미가 되어준 것이다.


  나의 취미는 발전의 속도가 느렸다. 생업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바빠서, 쉬고 싶어서 등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게으름을 피우기 십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바느질은 서툴고 봉제 방법이 익숙하지 않아 뜯고 다시 꿰매기를 반복한다. 물론 수고로움과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어떤가? 취미에 굳이 속도를 더할 필요는 없잖은가?      


  옷 만들기는 나의 시간에 맞추어 여유롭고 느리게만 흘러간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새로운 계절엔 새로운 옷을 만들어야 제 맛이다. 다시금 잡지를 뒤적이며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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