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탐색
아이들이 어렸을 땐 친구, 학교 얘기 외에도 대답이 궁색해지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로 조용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한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날이 줄어드니 한마디의 말이 소중해진다. 그만큼 말의 무게가 늘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점심 식사 메뉴와 같은 가벼운 일상 이야기는 상관없지만 진로와 이성에 관한 것은 말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혹여나 경솔한 말이 튀어나오는 건 아닌지 신경을 쓰다 보면 곱씹는 생각에 말수는 줄어들고 그조차도 천천히 하게만 된다.
수다라도 떨어볼 요량으로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와 카톡 친구 목록을 들여다본다. 스스럼없이 친한 동료와 친구의 이름이 보이는데 통화 버튼을 누르거나 카톡 메시지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짧지 않은 인생 경험이 즉흥적인 행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남편의 부재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부부는 촌수가 없다. 그만큼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는 관계라는 얘기다. 부부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는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소설인 ‘노트북’을 각색한 것이다. 작가의 실제 조부모 이야기로 철없는 10대에서 열정과 고통이 반복되는 20대,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은 사랑이다. 특히 치매에 걸린 부인 곁을 지키는 남편과 그들의 마지막 여정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기도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단연코 남편이다. 때로는 감정이 앞서 불편해지기도 하지만 말의 무게를 계산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짧지 않은 시간을 한 집에서 살아오며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는 가까울수록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고 알려준다.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는 복순이는 귀엽고 예쁘지만, 말을 못 한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니 비로소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이 집에 함께하게 된다. 그래서 일상이 소중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