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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Jul 16. 2024

내가 나를 버리려고 한 날

내가 나를 버리려고 한 날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며 책상에 앉아

창밖의 어두움을 바라본다     


술자리에서 뱉어낸 말들은 

공기 중에 흩어진 지 오래고

마셔낸 술은 오줌으로 내보낸 것 이외에는

지금 내 몸속에서 피와 함께 흐르고 있다     


왜 사냐고, 왜 살아야 하냐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빈 술잔을 멍하니 쳐다보며 있었다


친구에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도와 차도 어딘가에

배고픈 비둘기들을 위한 식사를 

넉넉하게 준비해 두고 왔다     


책상에 앉아 마지막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운 뒤

천천히 책상서랍을 열어 

작은 약통을 꺼내는 내 손길이 

차디찬 바람에 오돌오돌 떨리듯 떨리고 있다

이제 와서 두려운 것인가?     


나의 삼십 년 인생이 오늘로 끝이구나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태어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지만

떠나는 것만큼은 내 스스로 결정하려고 한다   

 

약통을 열어 약통 속에 가득 들어 있는 알약을

책상 위에 떨어뜨린다

촤르르르

알약이 떨어지는 소리가 내 귓가에 울린다     


책상 위에 흩어진 수십 알의 알약을 보고 있자니 

나는 이제 진짜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심장이 묘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어,

더 이상 이렇게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약을 한 움큼 집어 입안에 털어 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미리 떠다 놓은 컵의 물을 들이켜서

입안에 남아있는 약의 찌꺼기를 

목구멍 안쪽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졸음이 밀려온다

약기운이 슬슬 효과를 발휘하나 보다

버틸 수 없게 된 나는 침대에 몸을 누이고

눈을 꼭 감은 채 

두 손을 가슴에 가지런히 올린다     


평화스럽게 잠든 모습으로 발견되고 싶다

마지막 모습이 추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

환한 빛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내 몸을 흔드는 손길에

한참을 저항하다가 결국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다   

  

여기가 어디지?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서 바라보니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야, 이 녀석아

간밤에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서 뭐라도 꺼내서 먹지

원기소를 도대체 얼마나 먹은 거야?

하루에 9개까지만 먹으라니까

어이구, 내가 너 땜에 못 산다, 못 살아

속은 괜찮아?     


나는 간밤에 무엇을 한 것인가?     


방을 나가며

술을 먹어도 곱게 드세요, 라는

어머니의 외침이 

오래도록 방안에 울려 퍼진다     


원기소란 말이지? 

내가 지난밤에 먹은 게 영양제인 원기소란 말이지?

갑자기 뱃속이 꿀렁꿀렁거린다

과하게 섭취한 영양제가 그만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20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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