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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니발 Dec 28. 2023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연출분석 2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연출분석 1에서 이어집니다.


6. 창문과 안경

창문 넘어 지원을 바라보는 정원. / 체육관 창문 넘어로 철구에게 인사하는 정원.
버스 창밖을 보는 정원, 이때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 초원사진관의 창문을 깨버린 다림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유독 창문 너머 바라보는 장면이 많다. 버스 창문을 넘어 보는 정원을 보여주면서 산울림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가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이를 보면 창문을 보는 행위는 옛 기억을 떠올리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죽음을 앞두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정원의 태도와 맞닿아있다. 사진관에 찾아온 지원을 창문너머로 보는 정원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청소를 마치려 창문에 물을 뿌리는 순간 창문은 마치 추억처럼 일렁인다. 마치 손에 잡힐 듯이 일렁이면서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연출이 일품인 장면이다. 철구와의 만남에서도 창문을 통해 인사한다. 철구 또한 추억으로 남겨야 하는 존재이기에 창문을 통해 보는 장면은 추억의 회상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렇게 추억에 젖어있는 모습은 현실과는 거리를 두게 한다. 창문을 매개하여 세상을 바라본다면 당연히 그 거리는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미래에 나아가지 못하고 추억에 머물러 삶을 정리하는 정원의 모습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림이 창을 부수는 행위는 단순히 그녀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림은 정원에게 있어 현실을 살게 만드는 사람이다. 다림과의 사랑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원이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행위는 다림의 사랑을 방해한다. 따라서 다림이 사진관의 창문을 부수는 행위는 자신과의 거리를 좁히지 않는 정원에 대한 원망과 더불어 그와 함께 현실에서 사랑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을 보여준다.


죽음의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장면.

    이러한 시각에서 안경은 어찌 보면 정원의 눈에 쓰인 창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안경은 보다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데, 현실을 죽음이라고 치환한다면 안경은 정원이 죽음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초연하게 바라보게 한다. 정원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맞닥뜨리는 장면에서 그는 항상 안경을 벗고 있다.

    병원에 다녀온 후 검진결과가 좋지 않음을 알게 된 정원은 마루에 누워 안경을 벗는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몇 방울 흘리는데, 이는 정원이 직접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파출소에 연행되어 난동을 부릴 때, 취한 정원은 평소 드러내지 못했던 감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난동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연관이 되어있다. 조용히 하라는 경찰관의 말에 정원은 흥분을 멈추지 못한다. 왜 조용히 해야 하냐고 소리치는 정원은 마치 이미 조용히 하고 있다고 외치는 듯하다. 이미 정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자기 혼자 삭히고 있는데, 왜 나에게 더 조용히 하라고 강요하냐고 되물으며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다.

    밤에 천둥번개가 칠 때 정원은 잠에 들지 못한다. 정원은 창문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을 보이는데, 다음 장면에서 그는 아버지가 주무시는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 옆에서 잠을 청한다. 마치 아이 같은 정원의 모습을 통해 정원이 가진 죽음의 공포를 표현한다.


7. 할머니와 영정사진

사진을 찍는 할머니와 정원, 구도가 비슷하다.

    할머니의 독사진을 찍어주는 정원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신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할머니와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할머니의 독사진을 찍을 때와 영화 후반, 정원이 자신의 영정사진을 직접 찍을 때의 비슷한 샷을 보면 알 수 있다.

    할머니가 사진을 찍기 전 거울을 보며 단장하는 모습에 정원 또한 비친다. 거울이라는 한 프레임에 할머니와 정원의 모습이 함께 담기며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공유가 시각적으로 보인다. 정원의 표정은 초점이 나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원이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기 전 거울을 볼 때는 그의 표정이 명확히 드러난다. 정원의 표정은 할머니의 표정과 닮아있다. 영정사진을 찍는다는 착잡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사진을 찍으려 하자 둘은 환하게 웃는다. 죽음을 앞둔 사람 같지 않게, 밝게 어찌 보면 초연하게 사진을 찍는다. 영정사진을 찍는 행위가 죽음과 맞닿아 있다면 두 사람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같다.


8. 기다리는 다림

    다림은 기다린다. 연락이 오지 않는 그 사람이 야속하면서도 걱정된다. 먼저, 다림이 기다리는 모습은 디졸브 편집 방법이 쓰였다. 다림이 사진관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한 컷에 담아내면서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하여 디졸브 기법을 사용했다. 또한 다림이 나무 옆에서 기다릴 때, 오토바이 한 대를 보내면서 다림의 주의를 끈다. 이는 앞서 나온 정원과 마주치는 장면에서 나온 장면과 유사한 장면으로써 여기서는 다림의 실망감을 더욱 키우는 효과를 준다.

    결국 다림은 기다리다 못해 다른 사진관으로 향한다. 이때 사진관의 모습은 정원의 초원사진관과 많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더욱 현대적인 모습의 사진관에서 다림은 주변에 아무런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 대화를 거부하듯이 오로지 사진을 맡기고 딴짓만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모습을 통해 다른 사진관을 가는 행위는 오로지 일을 위해 가는 것이지만, 초원사진관에 가는 행위는 일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행위임을 드러낸다.

    다림은 정원을 걱정하는 마음에 편지를 쓰고 마침내 비 오는 날 초원사진관을 지나가는 도중 편지를 건네려는 결심을 한다. 이때 다림의 시점 쇼트로 초원사진관을 보여주고 다음 컷에 다림의 얼굴 정면을 보여준다. 다림의 표정은 언뜻 보기에 무표정하게 보이지만, 뒷좌석에 탄 사람들의 심드렁한 표정과는 대비되어 편지를 건네는 결정을 고민하는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또한 카메라의 구도는 인물을 타이트하게 잡는 대신 바스트 샷으로 잡음으로써, 뒤의 배경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더 멀어지기 전에 편지를 놓고 와야 한다는 공간의 이동을 보여주여 그녀의 행동이 더욱 간절하게 보인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다림이 가장 아름답게 나온 샷인 것 같다.


9. 다림을 잡지 못하는 손

영화에서 가장 애틋하면서 안타까운 장면.

    다림의 편지를 읽은 정원 또한 다림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정원은 편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카페 창문 너머로 다림을 보게 된다. 여기서도 정원은 다림에게 직접 다가가지 못한 채 창문을 매개로 다림을 그저 지켜본다.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참은 채 그저 정원은 창문만을 쓰다듬는다. 손은 초점이 나간채로 보여 더욱 나약해 보이는 느낌을 주는 반면, 다림은 환한 얼굴로 업무를 보며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다림과 정원의 마지막 만남은 끝이 나버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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