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 다시 읽기> 1999년 옷값 대납 의혹이 남긴 것
바야흐로 9월이다. 9월은 가을을 맞이하는 달이다. 이때 바빠지는 두 그룹이 있다. 곡식을 수확하는 농부와 정기국회 시작으로 국정감사를 앞둔 국회의원과 보좌진들. 특히 국회의원은 몇 년 뒤에도 그 일자리를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해 감사를 준비한다.
국정감사는 '국회의 꽃'이라 불릴 만큼 국회의원들이 작정하고 목소리를 높힐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만 되면 국회의원이 원하는 증인을 불러낼 수 있다. 유명한 인사면 더욱 좋다. 화제를 일으켜 본인 몸값을 키우기에 매우 좋은 기회다.
2018년에는 더본코리아 대표 백종원 씨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과 프랜차이즈 매장 문제로 설왕설래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청문회장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국정감사는 정해진 기간에 이루어지지만, 청문회는 불시에 벌어진다.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에 대해서는 여당과 야당의 협의 하에 국회에서 관련자들을 불러 청문회를 연다. 역시 증인이 출석한다. 대표적으로 2016년 12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를 위한 1차 청문회 당시 스포츠 재단 설립과 관련된 국내 10대 재벌 총수가 한 자리에 모였다.
필자는 이 두 사례를 보면서 과거 국정감사나 청문회장에 출석한 독특한 유명인사를 찾아봤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패션 디자이너 故 앙드레김(1935~2010)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앙드레김 선생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것일까?
1997년 겨울, 대통령 선거 N수생 출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렇게 이듬해 2월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출범과 동시에 큰 암초 두 개를 맞닥트렸다. 1998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과 1999년 옷값 대납 의혹 사건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검찰 고위급 간부가 문제의 중심이었다. 문제는 수사였다. 부하직원이 상사를 수사하는 행위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난다. 그래서 이러한 유형의 사건 수사를 위해 대한민국은 1999년 최초로 특별검사(특검) 제도를 도입하였다.
특검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국회가 법조인 출신 인사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을 재가한다. 현직 검사가 아니라서 그나마 형평성 있는 제도라 말할 수 있다. 그렇게 꾸려진 특검 팀이 정해진 기간 동안 수사를 전담해서 결과를 발표한다.
사실 특검제 도입 논의는 1987년부터 이어져왔다. 6.29 민주화 선언으로 헌법 개정(개헌)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당시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정민회>가 먼저 주장했다. 1974년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특별검사제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후 민주당 김영삼 대표가 5공 비리 조사 위원회 구성에 힘을 싣고자 본격적으로 특검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여당 민주정의당은 삼권분립과 충돌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도록 공방을 벌이다 국민의 정부 시기에 최종 도입한 것이다. 여야가 바뀌었지만 도입을 열성적으로 주장한 쪽은 야당 한나라당이었다. 야당 시절 특검제 도입하자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냐는 한나라당의 공세에 여당은 반발할 수 없었다.
거세게 반발한 쪽은 검찰 당국이었다. 이에 언론은 한국 검찰의 잘못된 풍토를 꼬집었다.
특별검사제의 필요성은 그 나라의 문화적 사법 풍토에서 찾아야 한다. 대륙법 국가(유럽)에 특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둘러싼 시비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 검찰은 수사권과 공소권을 독점하고 기소 불기소에 대한 배타적 재량권 등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중략)
검찰은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처리에 중립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권력형 범죄나 정치적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검제를 도입하면 표적수사 등을 논하는 소모적 논쟁이 줄어들고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과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1999년 6월 11일 동아일보 <진단 핫이슈, 특별검사제 도입> 기사의 일부를 발췌 및 정리한 것이다. 중립성의 잣대로 바라본 검찰은 이때나 지금이나 신뢰받지 못했다. 재밌는 점은 논조다. '특별검사제'라는 단어 대신 '검찰개혁'을 집어넣으면, 엊그제 발행한 경향/한겨레 신문의 기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아무튼 이러한 언론과 시민단체 등의 지지를 통해 특검제도 도입 논의는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검찰의 특검제 도입 반대가 헌신짝 취급받았다. 바로 이 옷값 대납 의혹 사건에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이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 최 회장의 부인 이형자 씨가 김대중 정부의 실세 장관급 부인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로비를 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최 회장 부인은 김태정 총장의 부인 연정희 씨에게 2천 여 만 원짜리 밍크코트 등 값비싼 옷을 선물하는가 하면 (중략)
최 회장 부인은 지난해 말부터 최 회장이 구속되기 직전인 지난 1월 말까지 정부 고위층 인사 부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고급 의상실 ‘라포스사’에서 1억여 원어치의 옷을 샀다.
한겨레신문은 1999년 5월 24일부터 연일 이 사건의 진상을 보도하였다. 사건 개요를 정리하면 이렇다. 최순형 회장의 부인 이형자 씨는 구속 위기의 남편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1998년 연말부터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 씨, 통일부 장관 등의 부인 배정숙 씨 등을 상대로 옷을 뇌물로 제공했다.
이 소식을 접한 배정숙 씨는 쇼크로 쓰러졌다고 하며, 연정희 씨는 이형자 씨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IMF로 침체된 사회에서 ‘1억 로비’ 의혹은 사회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지만 전말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이에 야당은 특검 수사를 외치기 시작했다. 반면 여당은 특검은 '무고'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먼저 8월 23일부터 3일간 '옷 로비 사건 청문회' 개최에 합의하였다.
청문회장은 진풍경이었다. 첫날은 주로 통일부 장관의 부인 배정숙 씨를 향한 신문이 이루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배 씨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 씨와 앙드레김 의상실에 방문한 적이 있느냐, 최 회장 부인 이형자 씨가 앙드레김 의상실에서 2400만 원어치 모피코트를 대신 결제하라고 시켰느냐 등 비리를 중심으로 질문했다. 그러나 배 씨는 "전혀 모른다." 라며 일축했다. 심지어 한 야당 의원은 배 씨가 작성하지 않은 문서를 토대로 질의하는 등 준비가 철저하지 않은 모습도 보였다.
둘째 날이 밝았다.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 씨에 대한 신문이 주를 이뤘다. 연 씨는 고위공직자의 부인으로서 매우 송구스럽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날짜와 금액 등 세부사항이 배 씨의 증언과 차이를 보였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가. 국회는 혼란에 휩싸였다. 검찰도 청문회 종료 직후 증언을 반박했지만, 증거가 없다 보니 제대로 된 반박이 될 리도 없었다.
이러한 미궁 속에서도 홀로 존재를 빛낸 순백의 예술가가 있었다. 바로 앙드레김 선생이었다. 첫째 날부터 계속 언급한 앙드레김 의상실 주인 앙드레김, 본명 '김봉남' 씨가 둘째 날 증인으로 출석했다. 회의가 속개된 저녁 9시부터 김봉남 씨를 향한 의원들의 집중 질의가 이어졌다.
질의는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증인을 '앙드레김'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실명인 ‘김봉남'으로 해야 하는지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김학원 의원: "먼저 앙드레김..."
목요상 의원: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예명/가명 말고 본명을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한영애 의원: "목 의원님 말씀에 동의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앙드레김으로 알고 있는데.."
목요상 의원: "법적으로 소명하면 본명 김봉남 씨로 밝혀지지 앙드레김으로 밝혀지지 않아요."
그렇게 '김봉남 청문회'가 시작됐다. 앙드레김은 의상실에서 배 씨와 연 씨가 옷을 샀는지, 얼마를 샀는지 등을 물어봤으나, 국회가 원하는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앙드레김 본인의 신상과 직업 정신을 알아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정형근 의원: "어떻게 해서 앙드레김이란 이름을 갖게 되셨습니까?"
앙드레김: "프랑스 외교관이 세계적 디자이너가 되려면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앙드레'라고 하라고.."
정형근 의원: "잘하셨네요."
정형근 의원: "증인의 가게에서 제일 비싼 것은 얼마에 팔리고 있습니까?"
앙드레김: "맞추면 제일 비싼 것이 180만 원... IMF로 다들 어려우니 디스카운트도 해드립니다."
한영애 의원: "800만 원짜리, 1200만 원짜리 모피 옷을 판다는 제보가 있는데..."
앙드레김: "전혀 아닙니다. 저는 본래 모피가 수입금지 품목이어서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습니다."
청문회 3일을 거쳤으나 어떤 의혹도 해소하지 못했다. 이에 언론은 “청문회에서 남은 것은 앙드레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것이다.” 라며 청문회를 자조적으로 평가했다. 8월 26일 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의 칼럼에서는 "옷 로비 의혹의 진실 규명 노력에 뛰어난 디자이너에 대한 '희화화'만 낳게 되어 서글프다." 라며 비통한 심정까지 드러냈다.
결국 이 사건은 가을에 특검 수사로 전환되며 60일 간 수사를 거쳤다. 결과는 최 회장 부인 이형자 씨가 거짓말로 옷 값을 대납했다고 꾸민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런 결과에도 '그 외로 남긴 것'이 참 많았다.
먼저 특검제가 도입되었다. 여당은 결자해지 때문에 특검제를 울며 겨자 먹기로 도입했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에 관한 수사가 검찰의 손을 벗어나는 날이 되었다. 이를 도입하기 위한 언론과 야당은 지금의 검찰개혁을 바라는 사람들과 같은 논리로 대응했다. 상대에게 불리한 점을 공격하기 위해서 들이대는 잣대는 결국 하나라는, 협치의 가능성을 엿본 것 같다.
또한 화려한 청문회는 오히려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준비 없는 청문회, 유명인을 그 자리에 불러내기에만 바쁜 청문회 등. 의원 개인의 출세라는 사리사욕에 사로잡혀서는 시민들이 궁금한 점을 바로 잡아줄 수 없다. 꼼꼼한 자료조사와 날카로운 질문을 개발해야만이 영양가 있는 청문회가 될 것이다.
2022년 9월, 우리는 아마 또 한 번의 특검과 청문회를 앞둘지도 모르겠다. 행정부 최고 수반인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와 관련된 여러 의혹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특검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검을 주도하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민주당이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에게도 특검법에 찬성할 것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지난 2년간 수사는 원 없이 하지 않았냐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검은 과연 진행될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1999년 옷값 대납 의혹 사건을 통해서 진실 공방을 넘어 다른 의문을 가져본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특검과 청문회는 되지 않을까. 특검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과연 제대로 된 준비를 했는가. 또 다른 '김봉남'이 나올 것인가. 정치권은 과연 성숙해 가는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