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말 좀 그만하세요
꽃을 재배하고 수출하고 온실을 둘러보고 일상처럼 살았던 하루하루가 서서히 지겨워지고 있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사와는 별개로 사람들은 서로를 헐뜯고 싸웠다. 특히 사장과 팀장들사이의 불화가 심했다. 전문가라는 A와 B팀장은 위로 치받고 아래를 우습게 알았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팀장밑에 있던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문제가 없으면 문제가 없는 것이고,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한 분위기들이 흘러갔다.
그렇게 1대 사장이 퇴임하고 새로운 사장이 뽑혔다. 여기는 지역에 있는 시관할 회사라서 사장도 결국엔 월급쟁이다. 그래서 장악력이 약하다. 새로 들어온 사장도 얼마지나지 않아 그 팀장들이랑 사이가 좋지 않아졌고 싸우는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새로운 사장은 팀장을 제끼고 팀장밑에서 일하던 계장급 인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사람들 사이를 차이나게 차별하고 자기만의 사람들로 꾸려나가고 싶어하는 듯하던 그 어느날,
"오늘 저녁에 뭐해"
무역팀 A-1계장이 물었다.
"네, 별일 없습니다."
"그럼 저녁이나 같이 먹자"
"그러시죠"
"7시에 88횟집에서 보자"
문을 열고 들어간 자리엔 이미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새로운 사장과 무역팀 A-1계장 그리고 무역팀 여직원, 그리고 생산팀의 내밑에 있던 직원등 몇 명이서 분위기 좋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난 생산관리팀 B-3계장이었다. 그렇게 속닥하게 새로운 사장이 팀장을 빼고 핵심인원이라 할 수 있었던 몇 명을 불러내 회식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어, 왔어? 앉어..자 한잔 하지"
"아..네"
그렇게 어색한 자리에서 몇 잔을 술이 돌 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순희씨는 무역팀장을 어떻게 생각해?"
사장은 새로 들어온 무역팀 여직원에게 팀장의 뒷담화를 할 시간을 준 셈이었고 이에 그 여직원은 자기 상사에 대한 별로 듣기 좋지 않은 일들을 마치 특급비밀인양 쏟아내기 시작했고 술안주로 괜찮았던지 몇 번의 술잔이 또 오고 갔다. 물론 나도 그 팀장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한 터이긴 했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에 말을 끊었다.
"숙희씨, 여기 들어온지 얼마나 됐죠?"
"네, 한 6개월정도 됐네요"
"그럼 아직 멀었네요..사람은 그렇게 쉽게 평가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나요?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일순간 분위기는 얼었다. 그리고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아 그래그래 팀장이야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고"
무역팀 A-1계장의 말로 다시 어색함은 풀린 듯 했지만 그때의 회식이후로 사장과 나는 서로를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사장이라면, 회사를 이끌고 설령 팀장들이 자기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이렇게 뒤에서 따로 사람사이를...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장이 좀 못나 보였다.
그러고도 난 열심히 꽃을 키우고 꽃과 관련된 일들에 빠져 살았다. 열심히 하루하루 온실에서 근로하시는 분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냈지만 사무실에만 들어오면 머리가 아팠다.
생산관리팀장은 온종일 말을 했다. 그냥 아무말이나..말로 스트레스를 푸는 건지 나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건지..진짜 하루종일 말로 설명하는 사람이었다. 난 뚜껑이 열리는 대신 머리에 진짜 지루성피부염이 생겨 머릿속이 진물이 굳어 딱딱해져 있었다.
이건 정상적인 회사생활이라 할 수 없었던, 의욕 넘치던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소중한 내 회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