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안 정상은 변호사 Dec 29. 2021

법정에서 유부남 행세한 변호사

총각변호사가 법정에서 '저도 결혼했습니다'고 선언한 사연

 천안변호사 번영법률사무소 정상은 변호사가 처음 변호사가 되고 재판에 출석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해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의뢰인이 남편으로부터 폭행당해 이혼을 청구하는 사건을 맡고 있었다. 남편은 부부싸움 도중 자주 폭력을 행사하였다. 많은 가정폭력 사건이 그렇듯이 의뢰인은 '나를 때린적이 많이 있지만 때릴 때 빼고는 좋은 사람이니까' 생각하며 이혼할 생각을 못 하였다.(사실 때릴 때 빼고도 나쁜 사람은 진짜 진짜 나쁜 사람이다.)


 어느날 평소보다 폭행의 정도는 훨씬 심하였고, 의뢰인의 비명소리에 결국 이웃이 경찰에 신고하였다. 이웃의 도움에 의뢰인이 용기를 내어 이혼을 청구한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처음에는 폭행 자체를 부인하며 의뢰인이 자해한것이라고 발뺌하는 남편 때문에 힘들었지만, 하나 둘 씩 증거가 확보되기 시작하면서 이혼 소송 중에 하였던 남편의 거짓말들이 결국 제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이 사건의 마지막 재판이 예정된 날, 여러가지 이유로 법정 안의 모두는 짜증이 가득한 상태였다.


 그날은 그 해 여름의 제일 더운 날 중의 하나였다. 재판이 1시간이 넘도록 지연되는 바람에 방청석은 대기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사람들이 벽에 기대 서있어야 했다. 에어컨은 고장이 난건지 사람이 너무 많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지 법정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재판을 대기하는 내 등에도 땀이 나서 와이셔츠가 쩍쩍 들러붙었다.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는 젊은 판사였는데, 평소 싫은 소리 못하고 인품이 좋기로 유명한 판사였다. 그런데 재판이 지연되다 보니 원피고는 평소보다 감정적이었고, 판사 역시 그런 감정싸움에 휘말려 뜻대로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다보니 재판은 더 지연되는 악순환에 난감해 하고 있는것이 눈에 보였다.


 드디어 내가 맡고 있는 사건의 재판순서가 되었다. 마지막 재판 날이었고, 이미 제출하여야할 증거와 주장들은 모두 제출되어 있기에 선고기일만 지정하고 끝내면 되었다. 판사의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는 몇월 몇일 몇시에 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로 재판장은 밀린 다음 재판 진행을, 나는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사무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때, 흰머리가 가득한 상대방 노(老)변호사는 모두의 그런 생각을 모르는지 혹은 모르는척 하는지 갑자기 구두변론을 시작했다.


 요지는 부부싸움 중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던 것은 인정한다,(본래 상대방은 우리 의뢰인이 자해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가 번영법률사무소 정상은 변호사에 의해 거짓말이 다 들통났었다.) 하지만 평범한 남편이라면 언제든지 그 정도 폭력은 가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제출한 의뢰인의 등 사진은 온통 주먹모양의 보라색 멍으로 가득차 있었다.)


 물론 터무니 없는 주장이었다.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는 커녕,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상대방이 불리해지기만 하는 주장이다. 평소라면 명백한 패배를 눈 앞에 두고 의뢰인의 무리한 요구에, 스스로도 서면에 적기 부끄러운 주장을 변론 마지막날 재판정에서 주저리 주저리 꺼내놓아야만 하는 상대방 변호사의 처지에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변론의 길이였다.


 본래 법정에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구두변론은 요지만 간결하게 이루어지고, 이를 정리한 서면을 제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상대방 변호사는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감정을 담아 계속하여 반복하고 있었다. 평범한 남편이라면 그 정도 폭력은 누구나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의 궁색함이 느껴지는지, 부부의 의미와 부부간의 다툼의 정의, 부부의 유래까지 온갖 관계없는 이야기가 다 나와 변론이 아니라 거의 지루한 연설에 가까웠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판사가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참고서면으로 내달라'고 하였지만, 상대방 변호사는 막무가내였다. '참고서면으로 제출하겠지만 꼭 말씀드려야 할것이 있습니다.'로 시작하여 그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기 시작하였다. 인품좋은 판사가 그만해달라고 사정에 가까운 호통을 한 번 칠때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로 시작하여 상대변호사는 이미 하였던 주장을 처음부터 반복하였다.


 땀이 주륵주륵 흐르는 더위 속에 평범한 남편이라면 그 정도 폭행은 할 수 있다는 억지 주장에서 시작해서, 부부관계의 의미와 고사성어, 각종 고서를 넘나드는 변론에 판사는 거의 이성을 놓은듯 보였다. 나는 이미 (심정상) 의식을 놓아버리고, 목욕탕 사우나 속에서 밖의 욕탕의 물소리를 멍하니 듣는 듯한 상태였다. 아마, 상대방 변호사에게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저쪽 상대방(남편)만이 이 법정에서 유일하게 흡족한 미소를 띄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고 모두가 정신을 잃을때까지 연설을 이어갈것 같던 상대방 변호사에게도 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틈에 판사는 재빨리 끼어들었다.


 상대방 변호사가 '재판장님이나 저쪽 변호사(정상은 변호사)나 결혼을 안 하셨을 테니 이해를 못하시겠지만,'이란 말을 꺼냈을때 판사가 '변호사님!'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판사 '저도 결혼했습니다.'


 전혀 법정에 어울리지 않는 예상치 못한 태클에 상대방 변호사가 주춤하는 태도로 다시 정정한다.


 상대방변호사 '아니, 결혼하신지 오래되시지 않으셨으니까'


 하지만 주춤하는 순간을 판사는 놓치지 않았다. 상대방변호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판사가 덧붙인다.


 판사 '결혼한지 오래되었습니다.'


 갑작스런 결혼여부와 오랜 결혼생활 발표에 연이어 판사가 천안변호사 번영법률사무소 정상은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판사 '정상은 변호사님?'


 멀어져가는 의식을 가까스로 잡고 있었던 나지만 판사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학교를 막 졸업한 어린 총각 변호사였다. 하지만 여기서 모처럼 판사가 쌓아올린 분위기를 깰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해야하는 당혹스러움이 내 머릿속을 스치기도 전에 더위를 타고 입이 먼저 대답했다.


 정상은 변호사 '저도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판사는 아무말 없이 잠깐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나는 방금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 초보변호사였다. 약간의 멘탈붕괴상태가 왔다. '이게 아닌가? 내가 뭐 못들은게 있나? 거짓말 하였다고 그러나?' 하지만 질책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순간의 고민 끝에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한마디를 붙여보았다.


 정상은 변호사 '저도... 오래... 되었습니다...?'


 그제야 판사는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는 듯이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갑자기 판사와 변호사가 유부남임을 선언하는 장면은 일반적인 법정에서 상상하기는 힘든 광경이다. 상대방변호사가 이게 무슨 일이지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판사는 순식간의 재판의 종결을 선언해버렸다.


 상대방(남편)은 변호사의 변론 원맨쇼가 흡족한 듯 법정을 나서서 돌아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결과는 우리의 전부승소, 완승이었다.




 그로부터 몇달 후, 위의 젊은 판사와 비공개 법정에서 만났다.

다른 방청객이나 상대방은 없고, 재판 시작시간까지는 조금 남아서 방청석에서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데, 갑자기 판사석에 앉아있던 판사가 사담(私談)을 걸어었다.


 판사 '정상은 변호사님? 어려보이시는데 결혼을 언제 하셨어요?'


 움찔했다. 벌써 몇달 전, 법정에서 거짓으로 유부남선언을 했던 일은 진즉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터였다. 어찌할까 하다가 이미 지난일인데 이제와서 어쩌랴 싶어 사실대로 실토했다.


 정상은 변호사 '저 사실 결혼 안 했습니다. 그날은 조금 욱해서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ㅎㅎㅎ 죄송합니다.'


 판사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장난스럽게 질책을 이어갔다.


 판사 '역시나, 저는 변호사님이 결혼하신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제가 잘못알고 있나 했습니다.'


 판사 '변호사님 나이가 어리신데 그렇게 대놓고 결혼한지 오래되었다고 하면 제가 믿겠습니까?'


 그렇잖아도 법정의 긴장이 아직 가시지 않은 초보 변호사는 판사의 장난스러운 질책에도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상은 변호사 '죄송합니다. 그때 상황이 그래서...'


 천안변호사 정상은 변호사의 사과에 장난스럽게 질책을 이어가던 판사가 껄껄 웃으면서 깜짝 놀랄 사실을 이야기했다.


 판사 '사실... 저도 총각입니다. 그때 상황이 그래서. 하하하'



 하하하.



—번영만사, 총각변호사가 법정에서 '결혼했습니다'라고 선언한 사연, 끝—



작가의 이전글 70년 우정과 .....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