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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테난조 Jan 02. 2024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8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8화






25. 오늘의 복잡함을 털어내고 싶다. 진심 다 잊고 싶다. 친구와 막역하게 대화를 하니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이 분위기가 영원했으면 한다. 끊고 싶지 않다. 나의 불안함은, 결국 추측일 뿐이지 않나?    


  

“우현아, 요즘 너 야근이 너무 잦아.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리 혼자서 일을 해? 예전에는 그래도 상의를 했는데, 요즘은 통 그러지를 않으니. 걱정이다. 몸 생각은 하면서 일은 해?”     



나이스! 김승기! 적절한 시기에 훅 들어간 질문이다.      



“승기야, 혹시 섭섭했던 거냐? 너와 상의를 안 해서?”     


“섭섭은 무슨, 너 나 모르냐?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나와 효상, 모두 너만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리더가 쓰러지면 큰일이지.”     


“승기야, 난 너 모른다. 너는 누구냐? 하하하”     


“그래, 우현아, 요즘 혼자 무슨 일을 하는 거야? 항상 밤늦게까지 일하고. 본사와 일하는 게 많아?”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은 너무나 순조롭지.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 승기가 괜한 말을 하네.”     


“그러면, 말 좀 해 봐. 요즘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정호 님이 우리에게는 말하지 말래?”   

  

“아니야, 별일 아닌데, 뭘 그렇게 궁금해해. 때가 되면 다 이야기할 거야. 그리고 알면 다친다. 진짜로 다쳐. 쉿~ 죽을지도 몰라. 워워~ 애들은 가라~가.”     



우현이의 농담은 농담이 아닌 일종의 경고로 들린다. 소름이 돋아 온몸이 섬뜩하다.      



“우현아,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면, 공유해야지. 너만 지고 갈려고? 그럴 수는 없다.”     


“승기야, 또 왜 그리 정색하냐. 농담이다. 농담.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우리가 무슨 조직 폭력배도 아니고. 효상아, 승기 앞에서는 농담도 못 하겠어. 안 그래? 하하하”     


“우현아, 참 승기 마음을 몰라준다. 요즘 혼자 대표실에 처박혀 밤새 뭘 하는 것은 맞잖아. 그러니 친구로서 걱정하는 건 당연해. 나도 그렇고.”     


“알았어, 알았다고. 이렇게 우애가 깊은 줄은 몰랐네요. 몰랐어요. 눈물 납니다. 고마워요. 다들.”     



지금이다. 우현이가 방심한다. 훅 치고 질문을 해야 한다.      



“우현아,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카쿠르터에게 지시를 해. 카쿠르터라면, 네가 지시하는 일은 뭐라도 할걸? 아니야?”     


“카쿠르터를? 직접? 그들은 승기가 관리하는 집단이지. 글쎄, 필요한 게 있으면, 승기를 통해 지시를 전달하면 될 것 같은데? 지금도 그러고 있고.      


“그건 맞아, 효상아. 내가 하면 되는 일을 굳이 우현이가 직접 지시할 이유는 없지.”     


통하지 않는다. 안 되겠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      



“너희들, 정말이냐? 아, 사실은, 난 가끔 사적인 심부름을 시켰거든. 카쿠르터한테. 너희들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어? 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해지는데.”     


“효상아, 무슨 심부름?”     






26. 우현이가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드디어, 우현이의 반응을 이끌었다. 무슨 거짓말을 더 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아니야, 사적인 심부름은 무슨, 거짓말이야. 미안하다.”     


“효상아, 거짓이 아닌 것을 알아. 무슨 일을 시킨 거야?”      


“승기야, 진짜야. 아무것도 안 시켰어. 그랬으면, 너한테 미리 말했겠지.”     


“진짜냐? 내일 확인하면 다 나와. 그러지 말고, 오늘 이실직고[273]하는 게 어때? 매를 맞아도 지금 맞는 게 덜 아프다.”     


“이실직고? 매를 맞아? 말이 좀 심하다. 김승기.”


“효상아, 승기야, 기분 좋은 날이다. 다들 왜 그러냐? 하여튼 너희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한 게 없다. 그래도 효상아, 궁금하기는 하네. 진짜 사적인 심부름을 시킨 적은 없어?”     


“우현이, 너. 친구로서 묻는 거냐? 아니면 회사 대표로서?”     


“물론, 친구로서 묻는 거다. 그러니 있으면 털어놔. 그래야 마음이 편하지.”     


“사실은 사람을 죽여 달라고 했어.”     



드디어 말했다. 거짓말은 절정을 찍는다. 승기와 우현이를 번갈아 쳐다본다. 승기는 정말로 놀란 듯하다. 눈썹은 찌그러진다. 미간은 올라간다. 그리고 거친 숨을 쉰다. 커질 대로 커진 눈동자는 나를 정확하게 바라본다. 우현이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못 들었나? 다시 말해야 하나?      



“안효상, 내가, 내가, 내가, 잘못 들은 거냐? 다시 똑바로 말해 봐.”     



승기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다시 묻는다. 더는 이 분위기를 유지하면 안 될 듯하다.      



“아이들 담임교사한테 전화가 왔어. 아이들끼리 싸움이 났다고. 그래서 부모님이 와야 한다고. 나도 어안이 벙벙했지. 학교폭력이라니? 내 새끼가?”     


“그래서?”     


“퇴근 후, 아이를 보니까, 얼굴을 맞아서 부어있더라고. 순간 이성을 잃었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인데, 누가 감히 손찌검을? 그래서 이유를 물었는데, 답을 안 하더라고. 답을.”     


“네 아이, 정말 착한데, 밖에서 싸움할 아이가 아닐 텐데, 그래서 효상아, 어찌 된 거야?”     


“아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답답하지만 더는 묻지 않았어. 학교 가서 담임에게 들으면 되니까. 그렇게 학교에 갔지. 그리고 담임이 그간 사정을 말하는데, 화가 나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     


“도대체 무슨 일인 게냐?”     


“우리 아이, 근래 시력이 갑자기 떨어지더라고. 그리고 후천적 적록색약 진단을 받았어. 우리 아이도 얼마나 힘들겠어. 알록달록한 세상을 더는 볼 수 없으니까.”     


“너도 힘들었겠네. 그래서 치료는 가능해? 원래대로 돌아올 수는 있어?”    

 

“일단, 후천적으로 생긴 장애라, 치료는 하고 있어. 하지만 모르지. 돌아올지는. 그보다 아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해. 부모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당사자인 아이는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다 보니까, 성격도 예민해지고, 화도 자주 내고. 그날도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그날?”     


“그동안 친구한테 적록색약이라고 말을 안 했나 봐. 그 또래, 충분히 창피할 수 있잖아. 미술 시간이었는데, 짝을 지어 그림 그리는 조별 활동을 했던 것 같아. 그때, 색칠을 담당한 내 아이가 적색을 구분을 못 해서. 결국, 칠을 망친 거지.”      


“그런데, 그 선생님도 그렇다. 어떻게 네 아이한테 색칠을 시켜? 아이가 적록색약이란 것을 몰랐어?”  

   

“그게, 그 선생은 외부 강사였어. 담임 선생님이 깜박하고 전달하지 않은 거야.”     


“그래서?”     


“그 미술 선생은 그 사실을 모르니까, 처음에는 빨간색 크레파스를 집으라고 말했대. 그런데, 아이는 색을 구분 못 하잖아. 그리고 친구들도 이 사실을 모르는 상태고.”     


“그렇지? 그런데?”     


“그러니까, 아이가 빨간색 크레파스를 구분을 못 하니. 그냥 있었지. 그런데. 그것을 반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다시 한번 이야기한 거지. 빨간색 크레파스를 집으라고.”      


“아, 그렇구나.”     


“당연히 집을 수 없으니까,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나 봐. 자리에서 일어났어. 뭐, 미술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겠지. 그때, 그 미술 선생이 우리 아이의 손을 잡아채, 빨간색 크레파스를 강제로 쥐게 했어. 그리고 모든 학생이 다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이게 빨간색 크레파스야.’라고.”     


“그래서 선생이 때린 거야? 그래? 그런 거야?”     


“그건 아니고, 한 학생이 웃으면서, ‘너 바보야? 색도 구분 못 해? 선생님, 병신과 조별 활동하기 싫어요. 바꿔 주세요.’라고. 그래서 싸움이 일어난 게지.”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서 그 미술 선생을 죽이려고 한 거야?”     


“아니, 사실, 그 선생도 알고 그런 게 아니니까. 우리 아이가 말을 안 한 것도 문제고. 미술 선생도 그 후로, 우리한테 사과했어. 우리도 역시 사과를 했고.”     


“그러면 누구를 죽이려 했다는 거야?”     


“그게, 우리 아이와 싸운 아이의 부모, 그놈의 면상을 지금도 생각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너무나 분해서.”     


“무슨 일인데?”     


“그래서, 결국은 좋게 마무리해야 하니까, 양쪽의 부모님이 만나서 원만하게 해결하기로 합의를 했어. 그래서 상대방 아이의 부모님을 만났지. 뭐, 솔직히 사과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야. 우리 아이도 잘한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새끼가 하는 말이, 반말하면서. 정말. ”     


“도대체, 그 새끼가 뭐라고 했는데?”     


“나를 보자마자 그러더라. ‘적록색약이야? 그러면, 보통학교가 아닌 특수학교로 보내야지. 왜 애먼 정상적인 아이가 피해를 보게 해? 만약에 그 조별 활동이 성적에 반영되면? 우리 아이가 당신 아이 때문에 피해를 보는데? 그러고 병신 맞잖아. 왜 맞는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아이를 때려?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야? 너무나 폭력적이잖아? 자기가 장애가 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지. 감히 우리 아이를 때려? 이래서, 이 동네에 있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기 싫었다고. 도대체가 격이 떨어져서. 원. 솔직히, 당신들 만나기도 싫었는데. 담임이 하도 부탁하니까 온 거야. 말 나오는 것도 싫고. 내 아이한테 사과해. 당신 아이와 당신이 함께. 치료비도 청구할까 생각은 했어. 그런데, 장애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하는 가정이라면 형편은 뻔하잖아.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사람 잘 만난 거야. 사과로 끝내.’ 이렇게 말하더라.”     


“완전 미친놈이네. 힘들었겠네.”     


“그래서, 이런 답답한 마음을 카쿠르터에게 말했는데, 그 친구 이번에 세입자와 집주인 보상금 문제로 같이 일하면서 친해졌거든. 그 친구가 말하더라고. ‘제가 손 좀 봐줄까요? 주위에 그런 일 하는 친구를 좀 알아서요.’ 하고.”     


“그러니까, 살인 청부를 한 게 아니구나. 휴, 다행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어야지. 그래서, 손을 진짜로 봐준 거야?”     


“나도 모르지. 아직 답은 없어.”     



승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승기야 미안하다. 다 거짓말이다. 아무 일도 없다. 다만, 내 아이한테는 좀 미안하다. 아이의 장애를 이렇게 활용해서. 걱정하지 마, 아빠가 반드시 네 적록색약을 고쳐줄게. 아빠만 믿어라.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던, 우현이가 드디어 입을 연다.      



“효상아, 힘들었겠구나. 그런 일이 있으면 내게 말했어야지. 카쿠르터보다는 내가 확실하게 처리해 줬을 텐데, 듣기만 해도 구토가 쏠린다. 너무나 화가 난다. 효상이 너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은 편해지네. 사실은 너희들한테 말 안 하고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따로 있는데, 고민 중이었거든. 말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아버지는 빨리 너희들한테 말하고 해. 너희도 결정해야 한다고.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아서. 고민 중이다. 결심이 서면 말할게. 그리고 효상아, 그 새끼 정보 좀 다음에 알려줘.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다. 이만 일어나자.”      



to be continued....




[273] 이실직고 (以實直告): 사실 그대로 고함. 이실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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