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테난조 Feb 09. 2024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14화

하키토브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14화





44. 이제 돌아가는 사정은 알겠다. 하지만, 아직도 의문이 남는 사건이 있다.      



“우현아, 그럼, 그 사건은 뭐야? 재건축사업으로 죽은 2명의 세입자? 이것도 다 네가 지시한 거야?”      


“2명? 산에서 다리를 헛디뎌 떨어진 그 영감님? 그건 정말로 실족사야. 나와 관계는 없고. 다음에 일어난 교통사고는 맞아. 죽이라고 지시한 게 아니야. 사고라고. 순전히 사고. 겁을 주려고 했던 건데, 실족사 사건은 우리가 한 짓은 아니지만, 연달아 사고가 나면, 이상하잖아. 꼭 우리가 한 것 같고. 그래서 자연스레 포기하도록. 그리고 이미 유가족인 아들과 상의한 일이야. 그 집 아들, 돈이 꽤나 필요했어. 코인에 빠져서 모은 돈 다 날리고, 집까지 저당 잡혔더라고. 효상아, 세상은 말이야. 이상한 일 천지야.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 천지라고. 만약, 그 아들이 돈을 원하지 않았으면, 나도 안 했어. 그래, 한 2분 망설이더라. 그리고 당시에 돈을 받아 갔어. 사고로 죽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미안함은 충분히 더 보상했고. 어떻게 보면, 아들이 살인을 교사한 셈이지.”     


“그런데, 어차피 다 가짜라면, 다 가짜인데, 어쩌자고 그런 일을 벌인 거야? 우현아, 이게 다 정호 님 지시니?”      


“아버지는 몰라. 어떤 미친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사주해? 지금도 모르는 사실이고. 알잖아. 우리가 부자 돈을 어떻게 쓰고 있었는지. 그러니, 매달 수익금을 지급하기가 어려웠어. 부자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 승기가 그러더라. 그 기자. 우리 투자자 중 한 명이 붙인 프락치[282]라고. 그래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한다는, 그러한 액션이 필요했어.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였고. 그러니까, 지금 네가 눈앞에 놓인 300억을 마주하고 있지.”      



우현이는 금고 옆에 놓인 여행용 가방 2개를 발로 툭 차며 말한다.      



“일단, 최대한 쓸 만큼 담아. 2~3년 정도 쉴 수 있을 만큼. 승기 몫도 챙기고. 세탁한 돈이라고 해도. 당분간 묵히는 게 좋겠지. 오늘 저녁 비행기로 중국으로 가. 아내와 아이는 이미 중국에 있고. 아, 알고 있지? 도청했으니. 오늘 한국을 뜨면, 카테피아 프로젝트는 정식으로 종료야. 당분간은, 아마 한 달 정도는 시간이 있을 거야. 너와 승기가 잠시 쉴 곳을 찾을 시간. 이번 달까지 투자 수익금을 전달할 수 있도록, 조치[283]했어. 다른 직원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너와 승기는 적당히 핑계 대고, 출장 다녀온다고 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무실 직원은?”     


“뭘 걱정하냐, 수사를 진행해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리고 승기가 이미 사무실 직원에게도 인센티브를 제공했어. 걱정하지 마. 사무실 직원이 몇이나 된다고. 아무도 다치지 않아.”    

 

“내가 만약, 이 모든 사실을 경찰에 알리고 자수하면? 결과가 좋아도 과정이 문제라면? 이건 아니지 않아?”      


“흠, 효상아, 그건 네 몫이다. 네가 다가올 후폭풍을 감당할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해. 설사 지금 당장 수사기관에 가서 모든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누가 그 말을 믿을까? 지금 우리 회사는 지극히 정상이야. 그리고 블루 고스트? 아무리 말해 봐라. 블루 고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찾을 수 없어. 처음부터 없는 존재니까. 너조차 확신할 수 없잖아. 블루 고스트가 실재하는지를? 결국,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주위 사람은 네가 미쳤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 오늘 비행기를 타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더군다나 지금 회사는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우리가 하는 일이 폰지사기로 드러나려면, 최소한 5개월은 지나야 해. 만약 정말로 자수하고 싶다면, 승기에게 의견을 먼저 물어. 승기는 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45. 우현이가 손을 내민다. 무슨 의미지? 수고했다는 뜻일까? 범죄에 이용돼서? 악수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여전히 모든 게 거짓처럼 느껴진다.      



“우현아, 그동안 내가 믿었던, 진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유토피아는? 카테피아는? 이렇게 수많은 이에게 악한 짓을 저지르고 넌 편히 살 수 있어? 정말로 그래?”     


“내가 그리고 네가 무슨 악한 짓을 했다고 그러냐? 우린 부의 재분배를 실천한 현대판 홍길동이라고. 나라에서 상을 주면 줘야지.”     


“그럼, 그렇게 떳떳하면, 왜 중국으로 도망가려는데?”     


“참 답답하네. 아무리 옳은 행동을 했어도, 우리는 시스템을 초월했어. 시스템을 초월해 이루어진 그 어떤 선도, 국가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거야. 너도 선택해야 해.”     


“우현아, 무슨 선택 말이냐. 난 모르겠다. 정말로.”     


“그러니까, 승기와 상의 후, 블루 고스트의 요원이 되어, 세상 모든 서민층을 위해 싸울지. 아니면, 네 말대로 국가 시스템을 초월한 대가를 치를지, 아니면, 평생 도망 다니면서 숨어 지낼지.”     



우현이는 핸드폰 2개를 건넨다.      



“대포폰이야. 너와 승기 것. 중국 간 후, 너희들에게 의향을 물으러 전화할 거야. 그 전화로 우리의 관계는 결정돼. 새로운 시작이 될지 혹은 마지막이 될지. 비행기 시간이 다 돼 간다. 그럼 간다. 몸조리 잘해.”      



이대로 헤어지기 싫다. 정말로 싫다. 이런 것을 보자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원하는 결말이 아니다. 난 그저, 쓸모없는 직감이 틀리기를 바랐다. 모든 게 기우라고 우현이가 말해 주기를 바랐다. 모든 것을 망친 기분이다. 내가 승기를 설득해서 우현이와 사업을 시작하고, 내가 카테피아를 만들어서 많은 이가 사기를 당하고, 내가 의심하고, 내가 도청해서 우현이도 이렇게 급하게 떠나고, 내가, 내가, 바로 내가, 우리 셋의 인생을 망친 주범인 것 같다. 아니다. 내가 주범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현이를 이대로 보내기는 싫다.      



“우현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그래, 효상아, 하나만이다. 어차피 또 만나서 세계를 누비며 선한 일을 하자고. 멋지잖아. 남아돌아 썩어 나는 부자의 돈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는 이 일. 안 그래? 모르긴 몰라도, 카쿠르터와 레벨 1 투자자는 블루 고스트를 신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 뭐야?”     


“네 말대로, 멋진 일이지. 현대판 홍길동이니까. 우린 의적이니까. 그런데,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사회의 혼란은 생각 안 해? 우리의 행동을 정말로 사람들이 이해할까? 그리고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너도 이를 폰지사기라 했으니까.”     






46. 우현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참을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말을 이어간다.      



“효상아, 비슷한 질문을 아버지께 했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으니까. 그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더라.      


‘임 대표, 아니 아들, 아버지는 블루 고스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낱 잡범에 불과했어. 네가 빚쟁이에게 시달린 이유? 그건 말이다, 아버지 일생의 가장 잘못된 선택이지. 능력을 바로 쓰지 않은 죄. 그로 인해, 네가 고통받은 나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구나. 아들, 사람은 크게 생각해야 해. 그래야 같은 능력도 크게 쓰일 수 있어. 그리고 크게 생각하려면,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해. 블루 고스트가 우리에게 그런 존재지. 우리가 하는 일? 누군가는 이를 폰지사기라 불러. 그래, 그들이 볼 때는 이는 범죄임이 틀림없지. 하지만, 이를 통해, 새 삶을 꿈꾸는 소외층은? 그들에게도 우리가 범죄자일까? 그들에게 우린 메시아야. 메시아. 그 누가 우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물론, 부자 중에 땀 흘려 돈을 번 사람도 많아. 그런데 말이다, 아들, 우리 사업에 끌려 돈을 투자하는 부자 중에, 바르게 부를 축적한 사람은 많지 않아. 왜인 줄 알아? 우리 사업 수익률은 처음부터 사기니까. 그렇게나 높은 수익률? 일반적인 사업에서 가능해? 불가능하지. 이처럼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높은 수익률에 투자한다는 뜻은, 과거에도 그렇게 돈을 벌었다는 뜻이야. 그들 모두 부정축재로 부를 쌓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질적인 부류지. 그들의 돈 일부를, 국가에서 말하는 불법적인 행위로 빼앗는다고,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어차피 남아도는 돈이니까. 어차피 다 쓰지도 못할 돈이니까.   

   

아들, 우리가 하는 일은 정말 범죄일까? 범죄라면, 너에게 권하지도 않았어. 블루 고스트는 부의 재분배를 앞장서 실현하는 급진개혁파야. 언젠가, 세상도 우리의 힘을 인정해, 함께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리고 남자가 태어났으면, 한번은 큰 뜻을 품어야지. 안 그래? 블루 고스트가 그러한 삶을 안내할 거야. 상상해 봐.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모두가 파란색 물결로 평화를 외치는 정화된 세상을 말이다. 부자도 거지도 없는 파란색만 존재하는 평화로운 유토피아. 그날을 위해, 우린 일정 이상의 부를 쌓은 모든 이에게 칼을 겨눠 부의 재분배를 실현해야 해.      


마지막으로, 세상은 실타래와 같아. 하지만, 완전하게 얽히고설킨 꼬인 실타래. 꼬인 실타래를 제대로 풀려면, 처음과 끝을 알아야 하는데, 워낙 엉켜서 처음과 끝을 찾을 수 없어. 그렇게 문명이 생긴 후로, 수천 년을 그 상태로 세상은 진보했지. 그렇게 엉망으로 엉킨 상태로 말이야. 그러니까, 아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선한 정책도, 꼬일 대로 꼬인 이 상황을 풀 수는 없어. 세계는 말이야. 꼬인 채로 진보하다가 자멸할 거야. 그렇기에, 세상에서 부르짖는 올바름은 결국 가짜지. 그 가짜로 아주 조금 틈이 생기기는 해. 그러니까 엄청나게 꼬인 실타래를 약간 느슨하게 하는 그런 일시적인 미봉책이지.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느슨해진 실타래를 보면서, 세상의 뒤틀림을 바로잡았다고 기뻐해. 하지만, 아들, 그것을 알아야 해. 그 느슨해진 공간을 유지하려고 주위의 실타래는 이전보다 더욱더 엉켜. 결국, 우리는 정해야 해. 누구의 공간을 느슨하게 할지를. 아버지는 정했어. 그리고 곧 너도 정해야 해.’     


효상아, 아버지 말씀 이후로, 삶의 방향을 정했어.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도 이제 명확하고. 이제는 너와 승기가 결정할 순간이야. 누구의 공간을 위해 살아갈지를. 네가 말하는 올바른 과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만, 난 우리가 하는 일이 올바른 과정이라 믿는다.


누구도 엉킨 실타래는 풀 수 없어.

약간 공간을 만들 뿐. 그게 진실이야.     


그리고 효상아,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



to be continued....




[282] 프락치(←러 fraktsiya): 특수한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체에 몰래 들어가서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사람.

[283] 조치(措置): 문제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대책을 세움.


매거진의 이전글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13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