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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순이 Jul 29. 2022

순수했던 마음을 그리며

최근 영화 중경삼림이 리마스터링 되어 재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90년대 홍콩 영화의 아이콘이라는 유명세 덕분에 그간 여러 차례 재개봉되어 이번 소식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지만 고전 명작이 이렇게 다시 시대를 넘어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사실은 반갑다.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보고 소위 말해 얼마나 깊은 홍콩 병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홍콩에 처음 방문했을 때 중경삼림의 영화 장면이 담긴 촬영지를 찾아다녔는데 그땐 지금처럼 정보가 많을 때도 아니라서 가이드북에 의지하여 물어물어 찾아갔다. 홍콩섬의 미드레벨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 영화의 OST를 들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감수성일까? 그래도 정말 즐거웠다.


나의 첫 홍콩은 지난 2008년 호주행 비행기의 스톱오버였던 이틀이었다. 그 시절은 이미 영국으로부터 반환이 되고도 10년이 훌쩍 넘은 시기였다. 그래서 중경삼림에서 보인 홍콩 특유의 분위기와 아련함은 아마 덜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20대 초반이었고 중화권 여행은 처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워낙 멋모르던 시절이라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것이 광둥 문화인지 대륙 문화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사진을 몇백 장씩 찍어대고 망고주스를 사 마시고 노포에서 싸구려 완탕면을 먹으면서도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 이 도시에 다섯 번은 더 방문한 것 같다. 이미 타 국가들도 여럿 방문한 뒤였다. 그리고 갈수록 느낌은 덜 해졌다. 사실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부 자극에 둔감해지려고 노력해 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순수함도 덜해졌다. 2019년 마지막 방문은 홍콩의 거리 시위가 극심한 시기여서 외출 자체도 쉽지 않았다. 성과를 내야 하는 출장의 부담 탓이었는지, 안전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는지 그렇게 따듯하던 홍콩의 습한 공기와 도시의 다채로운 색감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냥 거기서 끝이었다.


다시 잠들지 못하던 어느 날의 새벽, 출근시간을 마냥 기다리며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중경삼림의 재개봉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문득 잊고 지내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첫 홍콩 여행을 하기 전인 2008년에 설레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되풀이하며 느꼈던 그런 것들.  90년대의 한 미디어가 가져다주는 낭만은 정말로 큰 힘을 가졌다. 다시 돌아올 수 없어서 그런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995년 그때 나는 너무나 어렸다.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시절이 그리운 것은 대체 무슨 감정의 이입일까. 순수한 마음에 대한 그리움일까.  


홍콩에 처음 방문했던 날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나와서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배를 타고 가장자리에 앉았다. 배가 출발하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온몸에 안고 갔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어찌 보면 하잘것없는 그런 순간이 그리워지고 특별히 여겨지는 지금 내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30대 후반이다. 나름대로 많은 것을 해왔고 과분한 것들을 많이 얻어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상실한 많은 것들이 아쉽다. 그만큼의 애정과 설렘을 다시 가질 수 없음에 대한 헛헛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고 속세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다움과 순수함을 지키고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재개봉하는 중경삼림을 다시 보러 갈 것이다. 영화 자체가 순수함이나 동심과는 거리가 멀지만 순수했던 나를 다시 되새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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