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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순이 Nov 29. 2022

조금 늦은 인턴십, 파라과이 안녕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내게 인류와 문화의 다양성을 심도 있게 일깨워 주었으며 우루과이의 다리오 로드리게스가 성공시킨 멋진 발리슛은 그들이 사용하는 스페인어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했다. 하지만 어문학은 통번역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온전한 학문 혹은 목적으로 인정받기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 단점을 상쇄하는 장점을 찾아 어문학 전공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학부시절 수행한 멕시코 중장기 봉사활동 및 교환학생 활동, 그리고 졸업 후 근무한 국내외 기업에서의 경험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내게 상이한 언어와 문화로 현지 사회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 주었다.


사기업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내가 끊임없이 느낀 바는 한국 기업의 현지 진출이 생산성 면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장기적 관점의 현지화에는 실패한 점이다.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여러 형태로 빠르게 변화해 가는 지역사회의 상황 및 문화적 상황으로 인해 야기되는 리스크에 대한 대비는 간과한 탓이다. 정치와 경제는 그 나라의 사회, 문화적 상황과 긴밀히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된다면 서로 다른 두 나라의 상생은 용이해질 것이며 더 많은 기회 또한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지난 2017년 재직 중이던 회사를 퇴사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문적 관점에서 들여다보지 않았던 중남미를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대학원에서 얻은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외교통상부 주관 “중남미 지역기구 인턴 프로그램”의 참여일 것이다. 본 프로그램의 참여는 노동의 가치 실현이 수익 창출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는 사기업의 조직 방식에 젖어있던 스스로의 마인드를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남미의 파라과이라는 작은 나라에 파견되어 사람들이 사회개발에 기여하는 방법과 그들이 교육 수단을 사용하여 국가 간 상호 이익 관계를 창출하는 방법, 그리고 소규모 집단 및 개개인이 사회 구성원의 안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파라과이에서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자국의 빈곤한 경제 상황으로 인해 스페인으로 이민한 파라과이 사람 중 불법체류 등을 이유로 본국인 파라과이로 역 이민하는 사람들의 사회 재정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불법체류자가 됨을 감수하고 스페인으로의 이주를 결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국에서도 교육과 복지에서의 수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며, 좋은 삶을 살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답보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상황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또한 현 상황에 대한 개선 의지가 없고 금전적인 지원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에는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평등한 기회 안에서 그들도 다른 종류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가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여지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본 프로젝트의 참여로 인해 나는 교육의 평등, 삶의 평등 및 기회의 균등함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었고 모든 것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고자 했던 오만함을 반성할 수 있었다.


중남미에 한국의 인지도가 10여 년 전과 비교해 매우 증가한 것처럼 한국 사람들도 중남미에 대해 많이 친숙해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파라과이는 남미의 소국으로 우리에겐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미지의 땅이다. 파라과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라티노가 아닌 과라니로 규정하며 그들만의 분명한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 나라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며, 해당 요소는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에 유기적인 영향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파라과이의 고유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과라니의 기질은 라티노의 그것과 사뭇 다르며, 이러한 부분은 파라과이와 타 중남미 국가와의 차이점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인턴 경험은 단순한 업무 수행 이상으로 이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주었으며 개인적으로는 모든 중남미를 일반화하려고 했던 나의 무지함에 대해 반성하게 했다.


소박하고 친절한 파라과이 사람들과 출장지에 도착했을 때 반기며 식사를 내어 주시던 파라과이 가족들의 순수한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파라과이에서의 경험은 특별하다. 인턴 지원 단계부터 격려해 주시고 지원해 주신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님들께 감사드리며 많은 후배들이 해당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소중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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