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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두람이 May 06. 2023

입하

오늘은 입하다. '입하'라는 단어를 적고  보니 나의 마음여름이 시작된 것 같다.


문득 개구리울음소리와 쑥버무리가 생각난다. 이맘때 고향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맛있는 쑥버무리  먹고 싶어 진다. 먹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현재까지 한 번도 만들어보지를 못했다. 나는 엄마의 가족사랑을 닮으려면 아직 멀었다.


신록이 짙어진 초여름의 산책은 마음이 맑아져서 좋다. 주룩주룩 비가 내려도 상관없다. 다소 서늘해서 옷을 따뜻하게 입었다. 산책하다가 쑥 한 송이 뜯어 손바닥으로 살짝 문질러 코끝으로 킁킁 맡아본다. 고향 기억 속 풍경이 줄지어 몰려온다. 아버지도 오고 엄마도 오고 오빠도 오고 사촌동생도 오고 마을 친구들도 오고 하동 이모도 오고 화개 이모도 오고 귀여운 조카오고  섬진강 나룻배도 오고 하동의 화개 냇물도 오고 구례의 토지 푸른 보리밭 온다.


쑥에 대한 나의 추억은 특별하다. 일곱 살 무렵 화개 냇가에서 친구들과 수영을 할 때 쑥을 귀마개로 썼던 일. 그리고 엄마가 동네 사람들과 섬진강 건너 마을로 쑥을 뜯으러 가신 날을 잊지 못한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엄마가 저녁에야 귀가하셨으니 어린 나는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나신 줄 알았다. 엄마는 항상 나를 집에서 조용히 지내게 했다.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막내라는 이유로 험한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정말이지 그날 엄마가 뜯어온 쑥이 기다란 마루 가득이었다. 이 많은 쑥을 어디 쓰실 거냐고 여쭈었더니 오빠들이 다 모이는 설날에 모두 쓰실 거라고 했다.


사실 그랬다. 쑥을 가마솥 끓는 물에 데쳐서 넓은 평상에 말리셨다. 바짝 말린 쑥은 커다란 비닐봉지에 꽁꽁 싸매어 두었다가 겨울에 사용하셨다. 쑥떡을 할 때는 아버지의 수고로움은 컸다. 떡메치기가 그랬다. 찹쌀떡과 찹쌀쑥떡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가 찹쌀떡과 쑥떡을 칼로 알맞은 크기로 썰어놓으시면 나도 엄마 옆에서 콩고물을 묻히며 떡 만들기를 거들었다. 노란 콩고물이 묻은 쑥떡을 입에 오물거리던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와 엄마는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이러한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그때가 그립고  이때만 되면 되면 더 죄송하다. 누구나 살면서 지나간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부모님과 함께 한 기억이 힘이 될 때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때 몰랐던 것들이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갈 즈음에는 이해가 되고 더 창의적인 각도로 바라보기도 하니까.


요즘 계속 내리는 비로 인해 비염환자, 감기환자, 폐렴환자도  증가했겠구나, 싶다. 우리 집 막내 아가도 일주일째 아파서 마음이 편치 않다. 칼로 살을 깎아내는 듯 마음이 아프다. 한 계절이 한 계절에게 의무를 넘겨줄 때는 서로 간 공짜가 없는 듯하다. 서로 겪어내야 할 통증을 주고받는 듯하다.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나이 먹으면서 성장통을 앓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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