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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Jun 26. 2023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그림대화] 87

     어릴 적 ‘세상’의 전부였던 골목. 수평의 땅 위에서 수직의 전봇대에 기대어 아이들 여럿이 놀고 있다. 동네 풍경을 하얗게 탈색시켜 소실점으로 후퇴시킨 후, 아이들이 선 땅을 유독 검게 칠해 아이들만의 넉넉한 ‘무대’를 온전하게 구축하고 있다.


     마치 동네풍경을 그려 세트로 세워둔 연극무대라 해도 그럴듯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닷!!” 재빨리 돌아보는 술래와, 순간 멈춤 하는 아이들, 연극 도중에 카메라로 찰칵 찍은 장면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다리를 떼지 않으려 가까스로 버티는 아이, 무리하게 큰 걸음 떼어놓고 중심을 잡느라 자세를 낮추는 아이, 미처 다리를 내려놓지 못한 채 술래의 지목을 당하고는 놀라 넘어지기 직전인 아이, 진즉에 작게 한 걸음 떼어놓고 안전하게 기다리는 아이…… 아이들 하나하나의 동작과 모습에 표정까지 보여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어느새 나 역시 그림 속으로 뛰어 들어가 중심을 잡느라 몸을 비틀고 있다.


     제각각의 동작과 모습인데도 마치 함께 군무라도 추고 있듯이 통일적인 화면구성이다. 그러면서도 악보의 음표처럼 리드미컬하게 연결된 아이들의 동작들에서 경쾌한 음악이 들릴 정도로 역동적인 화면이다. 그 와중에 모든 장면을 한 번에 다 볼 수 있는 그 지점에 딱, 자리 잡은 누렁이 강아지의 위치선정이 기가 막히다. 게다가 그림 보는 나를 빤히 돌아보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즐거운 그림이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골목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_acrylic and oil on linen_91x116.8cm_2022/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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