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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Apr 23. 2023

진심은 감출 수 없는 몸부림에 가깝다

영화 <무뢰한> 리뷰

  국어사전에 검색해 보면, '무뢰한'은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무뢰한은 누구를 가리키는 단어인지 생각해 보았다. 영화 <무뢰한>은 재곤(김남길)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재곤의 직업은 형사다. 형사는 엄밀히 따지면 무뢰한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형사인 재곤은 이 영화 속에서 무뢰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재곤은 범인을 잡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폭력을 쓰는 건 예사로운 일이다.


  "일하다가 범죄자 하고 구분할 수 없게 되면 그걸로 형사는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퇴직한 선배로부터 부도덕한 거래를 제안받은 그는 거절도 수락도 아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형사와 범죄자의 경계선이 흐릿해진 것일까. 재곤은 어쩌면 이미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피하고자 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폭력에 길들여졌고, 정체성이 흔들렸다.

  재곤은 살인자인 준길을 잡기 위해 준길의 애인인 혜경(전도연)에게 접근한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혜경이 일하고 있는 마카오 단란주점 영업상무 이영준으로 들어간다. 영준이 된 재곤은 혜경의 곁에 머물면서 점차 혜경에게 끌리게 된다.


  혜경은 어떤 인물인가. 혜경은 영준으로 위장한 재곤이 거짓말을 주절주절 나열하는 걸 듣고는 단번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진심과 거짓을 가려낸다는 것은 혜경이 사람과 마주할 때 꼭 거쳐야만 했던 시험의 단계이지 않았을까. 거짓이 엉겨진 삶 속에서 혜경은 진심과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버티기 힘든 세상이지만, 사랑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런 혜경이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영준이라는 인물에게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랑 같이 살면 안 될까?"

  "진심이야?"

  "그걸 믿냐."


  혜경에게 애인을 떠나고 자기와 살면 안 되겠냐고 말하는 재곤은 순간적으로 속마음을 내뱉은 것이다. 진심이냐고 묻는 혜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재곤은 어설프게 자기가 한 말을 주워 담는다. 그걸 믿냐고 웃는다. 그럼에도 재곤의 진심은 이미 감출 수 없는 몸부림처럼 표출되고 있었다. 눌러 담지도 못하게 넘쳐흘렀다. 범인을 체포하려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재곤은 혜경의 곁에 더 맴돌고자 했다. 외상값을 받으러 간 혜경의 옆에 딱 붙어있고, 그가 팔아버린 귀걸이를 다시 사서 돌려주고, 혜경이 준길을 떠나보낸 채 홀로 살아가고 있을 때도 그의 곁을 쭉 지키고 있었다. 재곤이 혜경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토록이나 자명한 사실이다. 숨길 수 없었다.


  거짓말을 잘 알아채는 혜경은 같이 살자고 말하는 재곤의 진심을 안다. 그걸 믿냐고 둘러대는 재곤을 쳐다보며 혜경은 말한다.


  "아니야. 진심 같아."


  재곤은 혜경의 애인인 준길만큼이나 혜경에게 무례했다. 혜경이 원한 것이 사랑이었든, 구원이었든, 진심을 바라는 한 사람 앞에서 재곤이 한 모든 말과 행동이 불량했고 염치없었다. 사랑해서 미칠 것 같다는 몸부림을 있는 힘껏 부인하고, 내빼는 재곤의 모습은 서글프고 볼품없어 보였다.


  무례하고, 무뢰하다. 무뢰한 같은 인간 때문에 가슴에 비수가 내려와 꽂힌다. 온 신경이 무뢰한에게 쏠린다. 몰라서 더 아프고 엇갈렸다. 진심을 감춘다는 것은 오히려 마음속을 헤집어놓는 짓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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