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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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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04. 2024

울릉도 가족여행

<사흩 날>

3. 사흗날, 나리분지

        

 리조트의 조식은 고급이다.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 첫날은 우리만 아침식사를 했었다. 강풍의 영향으로 관광객이 적었나보다. 워낙 비싼 리조트라 그런지 손님은 하룻밤 자고 떠나는 것 같았다. 우리처럼 사흘을 묵는 여행객은 드물어 보였다. 이틀을 꼬박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나는 피곤하면 몸이 붓는다. 농부는 핼쑥해지는데 나는 살이 쪄서 볼이 풍선 아줌마 같다. 남매는 아직 생생하다. 젊음이 좋긴 좋다. 온종일 운전을 하며 가파른 골짝을 들며나는 아들이 안쓰럽다.


 나리분지를 갔다. 용암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섬 울릉도, 그 안에 한라산 천지처럼 너른 분지가 있었다. 뾰족 산이 빙 둘러 싼 분지는 평원이었다. 마가목을 키우고 그 아래 명이 나물을 키우는 땅, 기름진 옥토였다. 나리분지를 둘러싼 산에는 하얀 줄이 쭉쭉 골을 이루고 있었다. 삼나물과 고비를 삶아 말리는 촌로를 만났다. 포항에서 시집와 평생을 나리분지에 산다는 할머니는 눈빛이 맑았다. 산에 허연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눈이란다. 울릉도는 눈이 많이 온단다. 5월까지 눈이 있다는 분지는 바람이 찼다. 관광객도 없는 겨울에는 그 촌로도 포항에 나가 있다가 봄이 오면 돌아온단다.


 나리분지의 전통 토담집을 구경하고 농부와 딸은 용출수의 수원지를 찾아 산으로 들고 아들과 나는 숲길을 걸었다. 하얀 꽃, 섬 노루귀가 군락을 이루어 피었다. 숲에서 춘란도 만났다. 아열대 기후인 울릉도는 변이 식물이 많았다. 예를 들면 뭍의 엉겅퀴는 가시가 있지만 섬의 엉겅퀴는 가시가 없다. 무청 시래기처럼 삶아 말렸다가 된장국도 끓이고 나물로 볶아내기도 했다. 


 숲은 아늑하고 좋았다. 가끔 덤프트럭과 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이 지나다녔다. 어딘가에 건물을 짓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연 그대로 두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사람의 편리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이 싫다. 숲을 걷다가 동네에 내려왔다.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농부와 딸이 돌아왔다. 울릉도는 섬인데도 물이 풍부하다. 농부가 찍어온 사진을 봤다. 나리분지 안에 있는 용출수가 나오는 곳은 돌샘이었다. 예전에 한국 어디서나 봄직한 돌샘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리분지에서만 파는 씨 껍데기 막걸리를 시키고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주인은 묵나물에 부지깽이 풋나물을 섞어 초무침을 해 준다. 덤이라는데 어찌나 맛난지 한 접시를 나 혼자 다 먹었지 싶다. 울릉도의 산채를 얹은 비빔밥도 별미였다. 아들의 학교 동료 교사가 울릉도에서 일 년을 살았다며 전해준 맛 집이었다. 동료 교사의 추천으로 꼭 봐야 할 명소, 맛집 덕에 호강한다. 일반 관광객은 꿈도 못 꾼 골짜기와 음식점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나리분지를 나와 울릉도에서만 키운다는 칡소의 방목지를 찾아 돌아다녔다. 골짝 깊은 곳에 염소는 방목하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지만 칡소 백여 마리를 방목한다는 농장은 못 찾았다. 가는 곳마다 칡소 타령이라 농장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산청 구형왕릉과 비슷한 돌무덤을 찾았다. 진짜 비슷했다. 세 사람은 탐사를 했지만 나는 아랫녘 골짜기에 앉아 물 구경을 했다. 세 사람이 찍어온 사진으로 만났다. 그 섬에 첫 발자국을 찍은 사람은 파도에 떠밀려 겨우 목숨 부지를 했던 것은 아닐까.


 저녁은 리조트에서 가까운 수제 맥주 집으로 갔다. 파스타와 몇 가지를 시켜놓고 각자 취향에 맞는 맥주를 시켰다. 나는 흑맥주, 맛이 괜찮았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바다에 일몰이 내리고 있었다. 고즈넉하고 좋았다. 확 터인 창가에 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니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조차 우문인 것 같았다. 눈을 옆으로 돌리면 파릇파릇 연둣빛과 산 벚꽃이 어우러진 산이 그림처럼 카페를 감쌌다. 눈 아래 성불사에서 저녁 범종이 울렸다. 


 밤에 서성였다. 리조트 앞의 잔디밭 의자에 앉아 밤바다를 감상했다. 고요한 섬의 나라. 그곳은 관광지답지 않게 적막이 흘렀다. 근처 성불사 불빛이 오징어 배의 불빛처럼 은은했다. 이틀은 춥더니 사흘 째 밤바람은 시원했다. 연산홍이 피고, 홍매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부지깽이 나물이 사방천지 널려 있었다. 울릉도의 자생하는 산 벚꽃은 꽃이 특이하게 생겼다. 수피는 벚나문데 꽃은 매화를 닮았다. 자잘한 녹색 잎과 함께 핀 꽃이 특이했다. 자연에 맞추어 변하는 것이 식물의 세계일까. 처음 울릉도를 돌면서 아열대식물 군락과 기암괴석을 보며 대만 화련의 타이루거 협곡을 연상했다. 남매도 농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 다녀온 지도 까마득하다.  

 여행 사흘 차,  모두 지쳤다. 텔레비전도 안 켜고 그냥 잠들었다. 확실히 여행은 건강할 때 해야 한다. 다리 부실한 내가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먼 길이다. 나와 달리 농부는 새벽마다 딸과 함께 섬 돌이를 한다. 건강한 농부가 부럽기도 하다. 조용히 책을 읽고 숲을 볼 수 있는 집이 그리워졌다. 집이 나를 부르는 것 같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꿈도 안 꾸고 숙잠에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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