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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ug 26. 2024

소설 쓰지 마라

소설 쓰지 마라     



 농부는 심심찮게 ‘소설 쓰지 마라.’ ‘소설가는 거짓말쟁이다.’ 나를 타박주곤 한다. 젊어서는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지만 노인이 된 지금은 반박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소설 가니까.’ 인정한다. 농부는 원리원칙에 갇혀 농담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를 정자다. 마음공부하면서 융통성과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타고난 본성은 바뀌기 어려운지 지금도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당신은 입 다물고 있지. 우리 마누라는 소설 갑니다. 곧이곧대로 들으시면 안 됩니다.’ 못을 박곤 한다.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다. 아예 농부랑 모임에 갈 때는 묵언수행 중이라 작심할 정도다.


 어떤 때는 안쓰럽다. 나 같은 여자 만나 마음고생 많이 한다고. 농부는 지극히 상식적인 보통남자라면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여자다. 말 그대로 남의 눈치 안 본다. 남의 말을 경청도 하지만 풀꽃 하나도 무심하게 보지 않는다. 예민한 성격이라 나무 한 그루에 뻗은 수십 개의 가지를 헤아리는 셈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글감이 된다. ‘앉아 삼천 리, 서서 구만리’는 볼 줄 몰라도 머릿속은 온 우주를 관통하는 글쟁이다. 


 엊그제 묵은 친구들 모임에서도 내가 몇 마디 하자 농부는 ‘우리 마누라 소설 간 거 알제. 소설 쓴다고 생각해라.’며 핀잔을 주었다. ‘맞아요. 난 소설 가니까. 소설은 현실에 바탕을 둔 허구잖아. 간접경험도 경험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생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도 소설 좀 읽어라. 소설가를 거짓말쟁이라고 하지 말고. 소설가는 자신이 겪지 않은 일도 겪은 것처럼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 자니까. 당신은 죽었다 깨도 못하는 일을 하는 마누라잖아. 매도하지 마소.’ 그렇게 받아쳤지만 며칠 동안 생각나무였다.


 소설은 허구지만 바탕은 현실에 붙어있다. 소설 속에 삶의 진실이 담기고, 역사의 현장이 담긴다. 허구를 통해 현실 비판을 하고, 사람의 가치를 매긴다. 독자는 소설 속에서 희비애락을 느낀다. 소설이 진짜 같을 때 명작으로 읽히지 않을까. 독자는 소설 속 주인공을 닮고 싶어 하고, 주인공처럼 되지 말아야지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 소설 속 인물의 삶에 공감할수록 소설의 몰입 도는 높아진다. 명작이 왜 명작이겠는가. 한 편의 소설이 자신의 인생사를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소설을 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처럼』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삶을 내 소설 속에서 산다. 풀이 무성하고, 가시넝쿨이 있는 미개척지면 더욱 좋겠다. 그 길은 내가 걸어본 적 없는 길이기에 더 궁금하고, 더 두렵고, 더 애틋하고, 더 그리운 길이다. 소설을 통해서라도 그려보고 싶은 세계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소설로 그릴 능력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같은 소설을 쓸 수만 있다면, 포리스터 카터의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같은 소설을 쓸 수만 있다면. 그것만이 아니다. 글자를 깨친 이래 내가 읽었던 수많은 명작들, 어느 것 하나 나를 매혹시키지 않은 작품이 있었던가. 


 농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소설가는 거짓말쟁이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니까. 이야기란 거짓말일 수 있다. 가상의 주인공을 내세워 피를 돌게 하고, 말을 하고, 배경을 만들고 공동체를 만들어 주연과 조연을 배치하고 사건을 만들고 살아가는 모습을 만드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다. 소설을 쓰면서 혼자 미소 지을 때가 있다. 작가가 신이 되어 천지창조를 하는 것 같은 느낌, 작가 맘대로 죽였다 살렸다 할 수 있는 인물들, 희로애락을 작중 인물에게 부여하는 능력,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가공의 인물의 삶에 애착을 가진 존재일지 모르겠다.


 “진짜 참말 같은 소설 쓰고 싶은데 당신이 묵인만 해 주면? 당신 이야기를 각색만 하면 밋밋하니까. 깨소금도 뿌리고, 불에 지지기도 하고, 가시덩굴로 칭칭 감았다가 스르륵 풀어내면 농민 소설 한 권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이 모델 좀 돼 조라. 아니지. 실제 모델 이야기라면 자서전인데. 독자의 호응을 얻기 위해 기구한 인생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거짓말 좀 보태서 자서전을 써 봐?”


 나는 기겁을 하는 농부의 표정을 즐기고 있다. 노아 고든의 『영혼의 위대한 주술사』 같은 소설 한 작품만 남길 수 있다면 이승에 태어나 살다 죽어도 내 삶은 성공한 삶이 아닐까. 그런 소설을 쓸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 내가 사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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