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이 Jan 27. 2022

1. 첫날, 모든 것이 처음

1주 차

첫날이고, 모든 게 처음이다.

축구를 '배우는' 것도 처음이고, 내가 신을 축구화를 산 것도 처음이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날씨에 운동을 하러 나온 것도 처음이고, 아이들의 '엄마 잘해! 엄마 파이팅!' 응원소리를 들으며 집을 나설 때 느낀 기분도 처음이다.


후-하! 엄마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해 4명이 모인 첫날. 모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가진 비슷한 나이대의 엄마들이다. 등산이 취미라는 한 명 빼고는 누가 봐도 운동에 소질 없는, 아 너무 가혹하니까 아.직.까.진. 운동과 친하지 않은 저질체력들과 허연 물렁살들의 집합이다. 그래도 무언가를 배운다는 설렘으로 반짝이던(진짜 반짝거렸다!) 눈빛을 주고받고 나니 일단 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심지어 한 명은 출산 1년이 채 되기도 전인데 단유까지 하고 나왔단 말을 들으니 오, 이런. 할까 말까 고민하던 과거의 나 반성해라 즌쯔...


두구두구. 대망의 첫 훈련은 발바닥으로 볼을 잡아끌고 밀어주기.


축구를 배운다니, 발로 공만 뻥뻥 잘 차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하수. 단단한 발등뼈를 비롯해 인사이드(발의 안쪽 아치가 있는 부분), 아웃사이드(발등 쪽의 바깥 부분) 등 발의 어느 부분으로 뻥뻥 찰 거냐도 관건이다.


그리고 발바닥! 과연 발바닥으로도 공을 부리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대부분의 여자 사람들은 알까?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어디 가서 나 축구 좀 배워 본 여자요~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발바닥 훈련을 통해 발바닥 감각도 익혀야 한다는데 그러고 보니 발바닥, 너란 부위도 이렇게까지 인정받고 대우받는 거 처음이다??


사다리, 고깔 모양의 콘을 이용한 기본 훈련부터 발바닥 훈련까지 마치고 나니 연습 경기를 한다.


아, 연습 경기라니. 경기라니!!

남편한테도 고백했지만 일주일에 하루 하는 훈련시간이 다가오면 올수록 새로운 기술을 배움에 설레기도 하면서 수업 후반부엔 연습일지라도 '경기'를 한다는 부담감이 마치 시험을 앞둔 것 같다고. 막상 시작되면 부담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을 놓고 재미있게 임하지만 그 전까지의 심적 부담은 정말이지 중고딩 때 시험을 다시 치르는 기분이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시험 끝난 날처럼 그렇게 뿌듯하고 개운하고 신날 수가 없다.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너무 힘들다. 헉헉.


다행히 첫날 연습 경기는 우리 팀이 승리. 그중 내가 어쩌다, 어영부영,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 듯 3골 정도 넣었나? 골키퍼 없이 작은 미니골대에 넣는 경기방식이었는데 골을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란! 골 맛을 봐야 한다는 게 이 뜻이었구나? 꺄오! 나 앞으로 골 많이 넣을 거야! 골 많이 넣고 싶다. 축구? 더 잘하고 싶어!!


아들과도 종종 1:1로 게임을 해봤지만 상대가 아무리 축구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고 해도 키가 큰 성인과의 경기는 가슴팍 정도 오는 아이와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큰 막대 기둥 하나가 가로막고 있는 기분. 이래서 축구는 피지컬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느끼고 배운다. 그야말로 눈으로만 보고 귀로 듣기만 했던 축구를 내가 내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배우고 익혀나가는 것이다.


축구를 배우면서 일주일 중 이 한 시간이 삶에 큰 원동력이 된다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막연히 무언가를 배운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일상에 큰 지지가 되는 것도 맞지만, 다른 무언가가 아닌 축구를 더 잘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동기가 생긴 것, 아이와 남편의 스케줄대로만 움직였던 일상에 내 고정 스케줄이 생긴 것, 그리고 이제 막 40줄에 들어서기 시작한 나이의 내가 고민하기 시작했던, 나 자신만의 현재와 미래에 작은 발자취라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 이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에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다는 거다. 축구를 배우는 것을 넘어 그 변화를 자양분 삼아 이렇게 미루고 미뤄왔던 글쓰기까지 실행하고 있으니 이거이거 정말 신나는 일 아닌가? 나 자신 역시 최고야, 나 자신 토닥토닥.


설렘이 다 한 첫날의 수업은 한 명의 발목 부상을 남기고 끝났다. 시작할 때부터 부상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는데 역시나. 며칠 전 아는 언니한테 축구 같이 배우자고 꼬셨을 때 '친정 엄마가 축구 배우다 어디라도 부러지면 나는 그 꼴 절대 못 본다, 애들 절대 안 봐준다!'라고 했다며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아아- 엄마의 운명이여.


그나저나 첫날부터 부상인데 이러다 정말 누구 하나는 깁스하고 나타나는 건 아닐지.

우리... 다치지 말고 오래 해요. 아랐쬬? 제발~~~

매거진의 이전글 0. 어머님 아니고 싶은 어머님 축구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