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의 분개 15화
아마 내 뒤통수를 한 대 내리쳤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깐족대는 5학년 아이처럼 얄미웠을 듯싶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내비게이션부터 켰다. 현재 직장으로 발령받은 지 어느덧 4개월 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나는 출퇴근이 무섭다. 그런 내게 내비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이다.
내비를 켜니 다른 날과 달리 소요시간이 55분으로 찍혔다.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 다른 경로를 뒤져봤다. 그랬더니 그게 가장 일찍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평소 40분 소요되던 경로는 1시간 5분이나 걸리는 거로 표기됐다. 자혜로운 내비님이 알아서 최단 시간이 소요되는 곳으로 안내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원래 다니던 경로 안내로 바꿀까 하다, 어차피 내가 가는 길에 맞춰 안내될 걸 알기에 그대로 놔둔 채 시동을 걸었다.
아무리 막히는 월요일 아침이라도 평소보다 25분이나 더 걸린다는 건 뭔가 문제가 생긴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보통 사람들 같으면 내비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테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이유 없는 반항 같은 건 절대 아니고, 오로지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낯선 길을 운전하는 게 정말 정말 무섭다. 더구나 그게 일반 도로도 아니고 고속도로니 더더욱.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라는 안내가 나오는데 나는 평소처럼 좌회전을 했다. 그랬더니 조금 더 가서 우회전하라는 멘트가 또 나왔다. 나는 그 말도 가뿐히 무시하고 직진했다.
얼마쯤 달린 뒤 다시 우측 도로로 빠지라는 안내가 나왔지만 계속 직진했다. 이번에는 내비가 화가 난 듯 유턴을 하라고 명령했다. 아까 그 우측 도로로 다시 가라는 말 같았다. 하지만 우회전도 하지 않은 내가 유턴까지 해서 그 길로 갈 리 없지 않은가. 계속 직진했더니 내비도 지지 않고 경로 이탈 경고를 반복해 날렸다.
그 후로도 두 번 더 내비의 명령을 거부하며 내 목적지인 IC에 도착했을 때, 평소보다 25분이 더 소요됐다는 걸 알게 됐다.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내비는 조용해졌다. 내비와의 기싸움에서 결국 내가 승리한 것이다!
낯익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비로소 긴장감이 풀렸다. 어차피 늦었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평안해졌다.
그때였다. 내비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긴 것은.
항의하는 내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정말 청개구리가 따로 없단 생각이 들었다.
미안합니다. 내비님.
내비님을 무시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 낯선 길 운전이 무서워서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