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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 음식이 싫어요!

모든 음식이 달아져 버린 것에 대한 분개 27화

by 완두


당뇨 없다.

날씬하진 않지만,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는 않는다.

설탕에 대한 혐오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카페에선 카페라테 대신 바닐라라테를 주문하고, 조각 케이크나 뚱카롱도 서슴지 않고 먹는다.


위에 적은 글은 내가 개인적인 이유로 단맛을 피하거나 무턱대고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걸 뜻한다.

원래 달기로 작정하고 태어난, 달콤함이 자신의 정체성인 음식이 단 것을 문제 삼으려는 건 아니라는 것.


내가 참을 수 없는 단맛은, 달지 않아야 할 반찬이나 요리가 단 경우다.

단 김치찌개, 단 잡채, 단 김밥, 단 나물, 단 계란말이 등등.

단짠단짠 떡볶이나, 단맛이 적당히 느껴지는 불고기 정도는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다.


내가 단 음식 때문에 처음 놀랐던 기억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고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생활관이 있었고, 모든 학생이 그곳에 입소해 2박 3일 동안 예절교육이라는 걸 받아야 했다.

입소 이틀째 아침 식사로 김치찌개가 나왔는데, 그걸 한 입 먹은 뒤 적잖이 놀랐다.

학생 지도 도우미 선생님이 직접 끓여주신 그 찌개가 상당히 달았기 때문으로, '김치찌개를 달게 끊이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일종의 문화적 쇼크였다.


그리고 두 번째 놀란 순간은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은 한 직장에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긴 하지만, 당시에는 각 기관을 돌며 음식 만드는 걸 시연해 주고 그 조리 기구를 파는 판매상들이 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탕비실에서 시연한 요리는 잡채였다.

당면이나 채소를 따로 삶지 않아도 뚝딱 잡채가 완성되는 걸 놀라며 지켜봤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잡채의 맛이었다.

난생처음 먹어본 달콤한 잡채가 내 입에는 맞지 않았지만, 기껏 나눠준 음식을 남길 수가 없어서 깨작대고 있었다.

그때 평소 입바른 소리 잘하는 한 남자 직원이 말했다.

잡채가 왜 이리 달아요?

내가 할 말을 대신해 준 직원이 고마웠다.


위에 적은 에피소드가 벌어졌던 때만 해도 음식이 요즘처럼 달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대부분의 음식이 달다.

식당에서 사 먹을 때나 배달을 시킬 때는 격하게 단 음식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한다.

달아도 너무 단 음식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속상하다.


이 평화로운 공휴일 오후에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며칠 전 새벽 배송으로 주문한 비빔밥 밀키트를 먹으며 느낀 속상함 때문이다.

대단한 맛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비빔밥을 원했을 뿐인데, 첫 숟가락이 내게 남겨준 맛은 정체불명의 단맛이었다.


도대체 이 단맛의 주범은 뭘까, 해부하듯 비빔밥 재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당근 채, 시래기나물, 계란 지단, 콩나물, 무생채, 호박볶음...

하나 하나 따져보면 달 것 같은 재료가 없지만, 아마도 그 속에는 적잖은 설탕이 들어갔을 거로 생각된다.

물론 주범은 고추장일 거다.

일반 고추장이 아닌 설탕물로 묽게 만든 '고추장 시럽'이 요상한 비빔밥을 만든 일등 공신일 테니까.


단 것은 달게, 달지 않아야 할 것은 달지 않게!

이게 내가 원하는 음식 맛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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