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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듣는 여름의 잔향

Mystery of Love - Sufjan Stevens

by 오이랑

가을이 깊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내 플레이리스트의 상단은 여전히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저 우연히 음악을 먼저 만났고, 속절없이 매료되었다.


Sufjan Stevens의 목소리는 제목처럼 나지막이 귓가에 이름을 속삭이는 듯하다. 그 위로 흐르는 잔잔한 기타 소리는 어떤 날은 일렁이는 파도 같고, 어떤 날은 숲 속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처럼 반짝인다. 나른하고 감각적인 소리이다.


이 음악은 나를 자꾸만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흘려보낸 지난여름으로 데려다 놓는다. 훌쩍 떠나지 못해 결국 가보지 못한 바다. 찰나에 그쳤던, 더 깊이 즐기지 못한 물의 감촉.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뜨겁게 햇볕을 받아낼 용기조차 없었던, 그래서 허옇다 못해 누렇게 떠버린 나. 그 아쉬움과 후회 위에 이 음악이 쏟아져 내린다.

그러고는 이내, 그 후회로 멈춰 있던 나를 상상 속의 바다로 '첨벙' 뛰어들게 만든다. 음악을 듣는 동안 나는 가장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고, 가장 푸른 물결 속을 유영한다. 잊고 있던 설렘이 다시 심장을 뛰게 한다.


어제 문득 궁금해져 유튜브로 영화 소개를 찾아봤다. 누군가는 '동성애'라는 키워드로 영화를 요약했지만, 짧은 소개 영상만으로도 그저 '사랑'과 '연애'의 가장 보편적인 공식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물론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감히 평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음악이 좋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Mystery of Love'의 가사와 멜로디가 내가 막연히 꿈꾸던 여름의 풍경과 유사하다는 점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결국 나는 놓쳐버린 여름을 이 가을에 와서야 노래로 붙잡고 있는 셈이다. 음악에 기대어 찰나의 가을을 붙잡아 보려 하지만, 이 감상을 포착하는 순간 이미 계절은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음악이 불러온 상상 속 여름의 열기와 창밖의 서늘한 공기가 묘하게 뒤엉킨다.



https://youtu.be/gVVhHjyC04k?si=eFFv5w1WoEvzy7G9

Sufjan Stevens - Mystery of Love (from ‘Call Me Your Name’ Sound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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