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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고들꽃 Dec 23. 2022

소나무

추억으로 찾는 행복


 

 국민이 가장 사랑한다는 소나무의 육중한 줄기에 깊은 주름이 만들어졌다. 긴 세월 바람과 비, 태풍, 폭설을 버티며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햇빛을 더 잘 받을 수 있게 방향을 틀고 허리를 굽혀 만들어진 삶의 궤적을 보며 맘이 뭉클하다.

 소나무는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간다고 했다.

 요즘 산모들은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출산하여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으로 가는 것이 정례화되었지만 옛날엔 집에서 출산을 하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 집 대문엔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을 매달아 아이가 태어났음을 알리며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고, 무엇을 새끼줄에 끼웠는지를 보고 동네사람들이 성별을 알 수 있는 정보를 동시에 주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를 힘들게 하는 코로나바이러스도 사람과의 접촉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신생아가 태어나는 즉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혹시나 바이러스가 유입이 되는 것을 막은 것은 조상들의 지혜가 두드러졌다는 생각이 든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어 찔 때도 소나무의 솔잎을 깔고 찌게 되면 쉽게 상하지도 않거니와 송편에 향기가 배어 금상첨화가 되기도 한다. 옛적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았던 보릿고개 때에는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는데 바로 소나무의 수피를 벗겨 죽을 쑤어 먹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소나무 껍질에는 섬유질이 많이 있어 소화가 되지 않아 대변을 볼 때 그대로 나오게 되어 항문이 찢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래서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다'는 말이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소나무의 꽃가루인 송화로는 제사나 명절에 꼭 만들어 제사상에 올렸던 다식을 만들었고, 송진은 염증에 약재로 쓰였고, 죽을 때는 소나무로 만든 관을 사용하는 것이 최고의 관으로 쳤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간다고 했는데 과언이 아닌 듯하다.


  우리가 흔히 침엽수라고 부르는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는 모두 뾰족한 잎을 가지고 있어 나무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구분하기가 아리송하다. 특히 스트로브잣나무는 우리 주변 공원에 많이 식재되어 있어 소나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세 종류의 나무를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는 뭉쳐서 나는 잎의 개수를 세어보면 해결되는데 소나무는 한 집에 두 개의 잎이, 리기다소나무는 세 개의 잎이,  잣나무류는 다섯 개의 잎이 뭉쳐난다.


 소나무의 육중한 줄기에 고단하게 잡힌 주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아버지라는 자리의 책임을 지기 위해 묵묵히 살아왔던 친정아버지의 얼굴과 목에 두텁게 잡혀있었던 주름과 오버랩되었다.

 겉보리 한 말 가지고 본가에서 나와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아버지는 집안을 일으키려 평생을 사치한 번 하지 않고 검소하게 아니 더욱 아끼며 살아냈다. 아버지의 평상복과 외출복, 작업복은 친척분이 회사에 다니며 근무복으로 지급받았던 작업복이 전부였다.

 담배 농사를 짓던 이웃에게 품질이 좋지 않은 담뱃잎을 구해 손으로 부숴 가루를 내 종이에 또로록 말아 침으로 종이를 붙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구질구질해 보여

 "아버지, 그냥 담배 사서 피우면 안 돼?"

라고 하며 창피해했다.

또 중학교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왔던 아버지가 사진을 찍자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모습이 초라해 보여 사진 찍기를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는 졸업식에 아버지는 오시지 않았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아궁이가 있었고 나무로 불을 때면서 살았다. 저녁에 밥도 하고 소죽도 끓이느라 불을 많이 지피면 윗방 아랫목뿐만이 아니고 아랫방까지 따끈따끈해진다. 그러나 새벽이 되면 방바닥이 모두 식어 부모님은 일찍 일어나 군불을 땠는데 그때 두 분은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을 다정하게 많이 하셨다.

 "저 윗마을 아무개 집, 옆집 아무개 집에서는 ~ ~"

 "영숙이 한약 한 재 해줘아것어"

 "그래유"

그렇게  엄마와 아버지가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소리를 잠결에 어렴풋이 들으며 다시 따뜻해진 아랫목에서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내게 차원이동을 할 수 있는 행운이 온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장면 중의 하나이다.

 여름이 깊어가면 산에서 익는 열매 중 깨금을 한 움큼 따오시곤 했는데 연하고 부드럽고, 그리고 고소한 맛이 정말 일품이어서 지금도 그때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커피맛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한참 동안 향기가 좋은 헤이즐넛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이 개암나무의 열매가 헤이즐넛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깜짝 놀랐다. 깨금은 개암나무의 열매인데 충청도에선 깨금이라는 이명으로 불렸다. 또 가을철이면 새벽에 논과 밭을 한 바퀴 돌아 집에 오실 때는 바지 양쪽 주머니 가득 밤을 주워 내게 건네주곤 하셨다.

 지금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예술적 감각이 대단하신 분이었다. 한 번은 대나무로 단소를 직접 만들어

 "영숙아, 한 번 들어봐라"

 라고 하시면서 내 앞에서 곡을 연주하기도 하셨다. 또 정월대보름 때 주민들이 모여 사물(꽹과리, 징, 북, 장구)을 가지고 풍물놀이를 하며 집집마다 들어가 복을 빌어주곤 했는데 아버지는 꽹과리를 치며 맨 앞에서 상쇄의 역할을 하셨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며칠 후 산으로 둘러싸인 감자밭에서 아버지가 심어놓으신 감자를 캐는데 들려오는 소리라곤 오로지 새소리가 전부였다. 이 산골짜기를 혼자 다니시며 농사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적적했을까... 땅속에서 튼실하게 여문 굵은 감자를 캐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며 감정이 북받쳐 올랐었다.  


 며칠 째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아버지 젊었을 적, 외출했던 아버지가 머리 위에 하얀 눈을 쓰고 방으로 들어오신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 할아버지 같아!"

라고 말했을 때

 하얀 이 드러내며 순박하게 웃던 장면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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