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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고들꽃 Jan 04. 2022

 조팝나무

그리움

 덩굴성 줄기 짧은 가지에 아기 손톱만큼 작고 하얀 꽃을 풍성하게 피워내는 조팝나무는 주로 숲의 가장자리 경사지대나 바위지대에서 자라는 나무다. 그런데 요즘은 꽃이 예뻐 도심의 공원에 관상용으로 많이 식재하여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어 우리에게 꽤 친근한 나무가 되었다. 원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고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관목으로 생울타리용이나 경계를 만들 때 많이 이용된다.     

  4~5월에 줄기의 짧은 가지에 꽃이 피는데 노란색의 수술은 20개로 꽤 많은 편이고, 암술은 5개이다. 열매는 골돌(여러 개의 씨방으로 이루어지며 익으면 벌어진다)로 5개의 씨방이 있다. 씨앗이 나간 씨방의 모습은 얼마나 예쁜지 또 하나의 꽃이 피어 있는 것 같고, 잎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붉은빛을 내 다른 단풍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굶주림이 일상이었던 우리 조상들은 다섯 장의 하얀 꽃잎 안에 노랑 꽃술이 모여 있는 모습이 조밥으로 보여 ‘조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조팝나무의 영어 이름은 ‘bridal wreath’로 ‘신부의 화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풍성하게 꽃을 매달고 있는 낭창낭창한 가는 줄기를 들어 머리 위에 살짝 얹으면 손색없는 화관이 되기 때문에 그랬나 보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배곯은 우리 조상들은 조밥으로 보였고, 외국에선 신부의 화관으로 보인 것을 보면 달라도 참 많이 다른 것 같다. 삶을 살아내면서 경험이 축적되어 정서가 고착되고, 처해져 있는 환경에 적응하며 녹아내린 것들이 점철되어 가치관이 형성된다. 같은 것을 보고 모두의 생각이 상이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어딘가에서 엄마도

 조팝꽃처럼 환생하셨을까   


  바쁜 일정 속에서도 희귀한 꽃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저장한다. 축령산에 얼레지꽃을 보러 가고, 수리산에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을 보러 가고, 화악산으로는 금강초롱과 닻꽃을 보기 위해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카메라에 꽃들을 담는다. 힘들게 산에 오르며 보고자 했던 꽃을 발견하고는 예쁘다고 감탄하며, 이걸 봐서 너무 행복하다고, 웃고 떠들고 호들갑을 떨고 돌아오고는 했다.      

 업무 중의 하나로 자료집을 만들면서 조팝나무의 꽃 사진이 필요해서 그동안 저장해 놓은 사진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저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주변에 흔하게 널려 있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눈여겨보지 않았고, 그래서 사진도 찍어놓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앙증맞은 하얀색의 꽃을 풍성하게 피워내던 조팝나무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만 아른거리며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고 홀대했던 나 자신을 질책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사진을 쓸 수도 있지만 꼭 내가 찍은 사진을 사용해야만 하는 일이어서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늦가을이지만 겨울눈(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만들어져 겨울을 넘기고 봄에 꽃이나 잎이 되는 것)을 일찍 터뜨린 조팝나무 꽃이 혹시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11월이지만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어서인지 개나리, 덜꿩나무, 흰말채 나무, 산철쭉이 따뜻한 햇살에 속아 철없이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 간간이 보였다. 희망이 곧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아 걸음걸이가 빨라지며 산책로를 따라 조팝나무를 울타리처럼 심어놓은 곳으로 찾아갔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친정엄마도 오래오래 살아 늘 그 자리에서 언제나 있을 줄 알고 자주 찾아뵙는 것에 많이 나태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너무 어려서 못 가는 이유가 충분했고, 조금 더 자랐을 때는 학원에 다녀야 하고, 중간시험, 기말시험 준비해야 한다고 미룰 수 있는 핑계가 있었고, 아이들이 더 자라니 이제는 나도 내 꿈을 꾸고 이루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 찾아뵙는 것에 인색했다.

 어쩌다 엄마를 뵈러 가는 날에도 매번 밤늦게 친정집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발 일찍 좀 다녀라! 내 소원이다! 밤에 운전하며 오는 것 생각하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말씀하셨지만 늘 귓등으로 들었다.

 고향에 내려가는 것은 힘들게 시간 내서 오는 것이고 인심 쓰듯 가면서 집에 돌아올 때는 빛의 속도로 올라왔다. 요즘도 명절 기간 중 가장 차가 막히는 날은 명절 당일 귀경길이라는 뉴스를 접할 때면 내 생각이 나서 씁쓸해진다.    

            


 10 년 전 토요일 아침,      

 군대 간 아들이 한 달 동안의 신병훈련을 마친 후 부대 배치를 앞두고 처음으로 가족 면회가 일요일로 정해졌다. 그래서 토요일에 친정으로 내려가 하룻밤을 자고 친정엄마와 함께 논산훈련소에 있는 아들을 면회하기로 계획했다. 모처럼 만에 엄마의 소원도 들어줄 겸 오전에 일을 마치고 해지기 전 친정에 도착하기 위해 일찍 출발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사촌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좀 다쳐서 ○○○요양병원에 계시니 빨리 내려와라”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다쳤는데? 어디를 다쳤는데? 많이 다친 건 아니지요?”     

 “오빠, 근데 웬 요양병원이야? 그래도 교통사고면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에요? 우선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주세요!”     

 막 쏟아내는 내 말에 사촌오빠는 그저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내려와라.”     

라고만 했다.      

 ‘설마 많이 다치진 않았겠지......?’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조바심을 안고 도착해보니 요양 병원은 장례식장과 같이 있는 곳이었고, 엄마는 장례식장에 모셔져 있었다. 안개가 많이 낀 그날 아침 저수지 아랫동네에 사는 분에게 가을 벼 추수를 부탁하고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저수지 옆에서 포클레인과 부딪혀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엄마와 이별을 했다.


 엄마의 첫 기일을 맞아 고향집으로 내려가기 위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세상에나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길이 맘만 먹으면 이렇게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것을 이리저리, 차일피일 엄마한테 가는 것을 미루며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을 자책해 봐도 이미 되돌릴 수가 없었다.

늦가을,      

 삶에서 간절한 것은 늘 그렇게 멀리 있어서 천천히 찾아오듯, 헤매기를 한 시간여가 훌쩍 넘어 가을 햇살 속에서 하얗게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조팝꽃을 만났다. 이렇게 찾아다니다 보면 어딘가에서 우리 엄마도 조팝꽃처럼 환생하여 단 1분만이라도 만나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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