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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고들꽃 Mar 15. 2022

매미

한여름 방문객

 

            왼쪽부터 말매미, 유지매미, 참매미, 애매미   

  


 여름은 모든 생물들에게 생명력이 절정으로 치닫는 계절이다. 그중 대놓고 사람들의 청각을 자극하는 우렁찬 울음소리로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매미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종마다 다르지만 매미는 3년에서 최대 18년까지 땅속에서 애벌레로 살아가다가 초여름 어스름한 저녁에 땅을 뚫고 나온다. 나무나 풀 등의 줄기를 타고 올라 허물을 벗고 한 달여 남짓 치열하게 여름을 살다가 삶을 마감한다. 지상에서 주어진 짧은 삶이 얼마나 더없이 절절할지를 생각하면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를 이해해 줘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가장 큰 매미는 말매미로 땅속에서 6년간 살다가 6~10월에 땅 밖으로 나와 활동을 하는데 온통 검은색이어서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가로수에서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데 몸체만큼이나 울음소리가 커서 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귀를 막아야 할 정도이다.  

 유지매미는 매미들의 날개가 투명한 것과는 다르게 날개에 갈색, 흑색 및 초록색 무늬가 서로 알록달록하게 배열되어 있어 불투명한 것이 특징이다. 유지매미는 보통 6월 하순부터 9월 초까지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 듯한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이고 친근하게 느끼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맴맴 매~앰~’하며 7월부터 8월까지 흔하게 들리는 참매미이다. 몸의 윗변은 검은색 바탕에 녹색, 흰색, 노란색 등의 무늬가 있고, 유충으로 2~3년을 땅 속에서 보낸 후 밖으로 나온다.

 6월 하순부터 9월 초까지 마치 새가 노래하듯 맑은 소리로 우는 매미가 있는데 바로 애매미이다. 애매미의 앞날개는 투명하고 날개의 맥은 전반부가 초록색을 띄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크기가 작다. 수컷은 발음기가 길게 발달해 있고, 암컷은 산란관이 가늘고 길게 발달하였다.


 조선의 임금들은 평상시 시무복으로 입는 곤룡포와 함께 익선관을 쓰고 국정을 보았다고 하는데 익선관의 뒤쪽에는 매미 날개를 닮은 모양의 얇은 검은색 망사 두 개가 붙어있다. 익선관에 매미의 날개 모양을 붙인 이유로 매미는 농부들이 가꾼 곡식과 채소를 해치지 않고, 집을 짓지 않으므로 검소하고, 여름에 왔다가 가을이 오면 떠날 줄을 아니, 스스로 떠날 때를 알고 실천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단다.

따라서 익선관의 의미는 국민에게 청렴한 정치, 이로운 정치, 투명한 정치를 해 달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 익선관을 만들어 볼까요 ***   


                        


                                                     *** 추억은 다르게 기억된다  ***     

 한여름 바람 한 점 없고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나뭇잎과 잡초들은 맥을 못 추고 잎을 축 늘어뜨린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국민학교 시절 나의 여름방학은 꼭 여름날의 저 나뭇잎과 잡초만큼이나 고요하고 한가로웠으며 늘 적적했었다.

  내가 살던 시골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텔레비전도 없었고, 단 하나 세상과 소통을 할 수 있었던 방법으로 라디오가 있었다. 라디오 크기 만한 밧데리(예전 사용하던 발음)를 라디오 뒤에 대고 고무줄로 한데 묶고 안테나를 길게 뽑아 주파수를 맞춰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지지 지직’하는 잡음으로 많은 채널이 잡히지 않아 선택이 한정적이었다.

 엄마 아버지가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나가시면 무남독녀였던 내가 주변에서 들을 수 있었던 소리는 많이 단조로웠다. 안방 벽에 매달아 놓은 커다란 괘종시계의 시계불알(시계추로 할머니들이 쓰던 말)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와 실컷 낮잠을 자고 일어난 고양이가 잠에서 깨어 앞다리를 쭉 편 채 스트레칭하며 ‘야용’하던 소리, 담장 밖 외양간에 묶여있는 어미 소의 느릿한 울음소리가 전부였다. 더위로 사람들의 몸도 축축 늘어지는 시골집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곤 종묘 상회에서 씨앗을 구입하고 공짜로 얻어온 부채를 이리저리 흔들어 더위를 밀어내며 마루에서 뒹굴뒹굴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한낮의 적막함을 단번에 깨는 소리가 있었는데 바로 우렁차게 울어대는 한여름의 방문객 매미소리였다. 함께 놀 형제자매도 없었고, 요즘의 아이들처럼 여기저기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지도 않았고, 줌 수업도 없었으며, 성적 때문에 안절부절못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심심하고 무료하고 적적할 때 들었던 우렁찬 매미소리는 대조적 이게도 내게는 외로움의 최고조를 표현하는 소리로 들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인구증가가 있었던 베이비붐 시대에는 형제가 5~6명쯤 되는 것이 보통이어서 동네는 아이들의 소리로 늘 왁자지껄했다. 아이들은 마을에서 마당이 넓은 어느 집, 또는 그때그때 어디선가에서 모여 놀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되면 이 집 저 집에서 자식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형제, 남매, 또는 자매들은 둘씩 서넛씩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난 혼자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그렇게 혼자서 집으로 가는 길은 늘 쓸쓸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 아버지와의 추억을 함께 떠올리고, 어린 시절을 함께 기억할 사람이 필요해졌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을 기억해 주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고, 울고 웃으며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내며 쌓았던 추억을 함께 공유하며 가족 안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이야기 주머니에서 꺼내듯 이야기하고 싶지만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또 많이 쓸쓸하다.

 부모님과 영원한 이별을 할 때 그것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심적으로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같은 아픔을 서로 이야기하며 함께 치유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 힘이 될 수 있는 형제가 없다는 것이 또한 쓸쓸하다. 형제간의 사이는 부모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소리를 듣고,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자신의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은 다르게 다른 기억으로 점철된다. 누구는 매미소리를 들으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눈을 감고 쉴 수 있는 편안한 힐링의 시간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 매미소리는 너무 외로워 혼자 듣고 싶지 않은 쓸쓸함의 대명사로 연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올 것이고, 매미의 우렁찬 매미소리도 들릴 것이다. 올해는 매미소리가 어떤 형태로 다가오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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