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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파파 Sep 03. 2024

가을의 사색,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짐하고 챙기는

철인 3종 아이언맨 구례 12

조금 더 시원해진 9월 새벽입니다. 평소처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문 앞에 놓인 신문을 가지고 들어와 대강 훑어보았습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집에서 출발. 오늘은 아주 힘든 정도는 아니지만 내일 프로그램과 세트처럼 적당히 높은 강도 프로그램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반포종합운동장 트랙까지 따릉이(공공자전거)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반포 방향으로 가는 한강 산책로와 잠수교 강바람이 무척 시원하게 불어와 기분 좋았습니다. 심장도 한여름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박동하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따뜻해지는 제 몸을 시원한 바람으로 적셔주며 반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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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000m 트랙 러닝 프로그램입니다. 타임트라이얼만큼 온 힘을 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편안하게 뛸 수 있는 페이스 속도 또한 아닙니다. 1km당 3분 35초 페이스이고, 3000미터를 모두 달리면 10분 45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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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가을에 흔히 사람들은 낙엽을 긁어모아 불사르고 그 재를 뿌리짬에 묻어주는데, 이것은 새로운 나무의 식목이 아니라 이미 있는 나무를 북돋우는 퇴비와 같다 했습니다. 가을의 사색도 이와 같아서 그것은 새로운 것을 획득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짐하고 챙기는 ’약속의 이행‘이라 하였습니다. 혹시나 잊고 있는 약속들을 찾아서 거두는 조용한 추수의 사려 깊음이라는 말로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 등 숱한 자리마다 올가을에 큼직큼직한 수확이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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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달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봄과 여름 동안 열심히 다듬고 연마한 몸과 감각으로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통해 10월, 11월 대회에서 수확하고 추수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봄여름 페이스를 한껏 올리고 속도 감각을 향상해 가을에는 그 스피드를 잘게 나누어 풀코스 마라톤에서 발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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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트랙에서 3000m 기록을 측정했을 때에는 10분 27초가 나왔습니다. 예전에 비해 느려진 기록이지만 무더운 날씨 속 둔해진 몸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였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오늘은 그만큼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늘 정도 페이스와 속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몸을 유지하고 있다 생각하니 그것 또한 감사했습니다. 내일은 1000m 적당한 질주와 1000m 빠른 조깅 불완전 회복을 반복하는 또 다른 메인 프로그램이 기다립니다. 오늘도 적당한 강도, 내일도 적당한 강도로 진행됩니다. 마라톤이라는 레이스 자체가 일순간 강한 힘을 다해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낙오되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과 동작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종목입니다. 풀코스 훈련도 그와 같습니다. 중간보다 아주 약간 더 힘든 느낌으로 약 100일간 지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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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시간 여유가 있어 천천히 달려갔는데, 잠수교를 건널 때쯤 아이에게 연락 왔습니다. 이제 막 6시 1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인데 벌써 일어났네요. 어제 그렇게 일찍 자더니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한밤중인 엄마를 괴롭히다가(?) 심심해서 아빠에게 연락했나 봅니다. 속도를 조금 높여 뛰어갔습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을 보니 오늘 저녁에도 아이는 이른 시간 잠들 것 같습니다. 저도 일찍 자야겠습니다. 내일 새벽에도 부지런히 일어나 적당히 힘든 운동을 이어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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