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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청사진, 사용자 경험의 이면을 설계하다.

보이지 않는 구조를 설계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도구

by 전예진



서비스를 기획할때 왜 청사진이 필요한가


UI 리뉴얼 요청으로 시작된 항공사 예약 서비스 개선 프로젝트. 처음엔 더 직관적인 예약 화면과 마일리지 연동 기능이 과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용자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온 말은 의외였다.


“앱에서 예약했는데, 공항 체크인 데스크에선 예약 정보가 없다고 했어요.”
“좌석 선택은 했는데, 탑승권에 다른 좌석이 찍혀 나왔어요.”
“결제했는데 예약 내역이 날아갔어요. 고객센터는 전화 연결도 안 되고요.”



화려한 인터페이스 뒤에 숨어 있던 문제는 ‘설계되지 않은 백스테이지’였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화면만 잘 만든다고 좋은 경험이 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그때부터 나는 ‘서비스의 이면’을 설계할 필요를 절감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비스 청사진’이었다.



서비스 청사진이란 무엇인가?

서비스 청사진(Service Blueprint) 은 고객의 행동 흐름을 중심으로,

서비스가 작동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함께 시각화하는 도구다.


주요 구성은 다음과 같다:

Customer Actions: 사용자의 주요 행동

Frontstage: 사용자와의 직접 접점(UI, 직원 등)

Backstage: 내부에서 지원되는 작업

Supporting Processes: 서비스 제공을 위한 시스템과 조직

Evidence: 사용자에게 인식되는 물리적 단서


이 도구의 강점은 ‘고객 여정 맵’처럼 겉으로 드러난 흐름뿐 아니라,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내부 구조와 책임의 분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적용 사례: 항공 서비스 예약 프로젝트에서의 청사진 설계

그 프로젝트 이후, 나는 서비스 청사진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서비스 청사진을 본격적으로 적용해본 프로젝트는 항공사 예약 UX 개선이었다.

사용자 행동, 시스템 흐름, 조직 간 역할 분담, 그리고 실제 고객에게 전달되는 ‘증거’까지 모든 것을 구조화했다.


1. 고객 행동 (Customer Actions)

• 항공편 검색 날짜 선택 좌석 선택 결제 예약 확인 공항 도착 체크인 탑승


2. 프론트스테이지 (사용자와의 직접 접점)

• 앱 UI (검색, 예약, 결제 화면)

• 공항 키오스크

• 체크인 데스크 직원

• 예약 확인 알림 및 이메일


3. 백스테이지 (내부 작동 흐름)

• 예약 DB 등록

• 좌석 배정 시스템 호출

• 마일리지 연동 로직

• 키오스크와 앱 간 동기화

• 체크인 시스템 연동


4. 서포팅 프로세스

• 제휴 카드사 결제 API

• 고객센터 대응 프로세스

• 코드쉐어 항공사 연동

• 자동 알림/이메일 시스템


5. 물리적 증거 (Evidence)

• 예약 완료 푸시 알림

• 이메일 확인서

• 체크인 티켓

• 앱 내 ‘예약 상태’ 안내




무엇이 달라졌는가?

청사진을 통해 드러난 시스템 간 단절, 책임자의 모호함, 자동화 누락 등을 시각화하여 CS팀, 개발팀, 운영팀, 디자인팀 모두가 같은 그림을 보며 협업할 수 있었다. 각 접점에서의 문제를 명확히 시각화해 공유했더니, 예상 외로 빠르게 이슈가 정리되었다. CS팀은 어떤 문제가 자주 반복되는지 파악하고, FAQ를 개편하고, 개발팀은 DB 동기화 타이밍을 조정해 ‘좌석 선택이 적용 안 되는’ 문제를 해결했으며, 운영팀은 키오스크와 앱 간 실시간 정보 연동을 강화했다. 마지막으로 디자인팀은 예약 상태 안내 문구와 버튼 위치를 재배치해 사용자의 불안 요소를 줄였다.

그 결과,

예약 실패율 30% 감소

고객센터 문의 45% 감소 (런칭 2주 후 기준)

사용자의 신뢰도 및 예약 완료율 상승


서비스 청사진이 바꾼 것: 단순한 ‘UI 개선’이 아닌 ‘서비스의 구조 개선’

서비스 청사진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업무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조직 내부에 공통 언어를 만들고, 협업을 촉진하며, 시스템의 빈틈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특히 항공 서비스처럼 복잡한 백엔드 로직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힌 서비스일수록, 청사진의 힘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무에서 꼭 고려해야 할 서비스 청사진 설계 포인트


1. 고객의 실제 경험을 중심에 둘 것

기능 중심이 아닌 경험 중심으로 여정을 구성하라. 감정과 맥락이 담긴 흐름이 중요하다.


2. 접점마다 ‘증거(Evidence)’를 명확히 할 것

고객이 “이용하고 있구나” 느낄 수 있는 시각적·물리적 단서가 필요하다. 예: 예약 완료 알림, 영수증, 확인 메일 등.


3. 프론트/백 스테이지의 책임 분리를 명확히 할 것

누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계 초기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4. 각 시스템을 분리하지 말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할 것

앱, 웹, 매장, 전화 등 다양한 접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라. 고객 입장에선 모두 하나의 서비스다.


5.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도 포함시킬 것

직원 간 협업이나 고객과의 대화 채널(전화, 챗봇, 오프라인 설명 등)도 서비스의 일부다.


6. 서비스 생태계 전체를 이해하고, 각 접점이 여정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분석할 것

사용자, 운영자, 파트너사 등 서비스에 참여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역할과 동선까지 고려하라.




사용자 경험의 이면을 설계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써

서비스 청사진은 단지 프로세스를 정리하는 ‘정리 도구’가 아니다.

서비스의 구조를 설계하고, 조직 내 협업을 촉진하며, 실패 경험을 사전에 줄이는 전략적 도구다.


인터페이스만 잘 만드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아니라, 서비스의 본질을 설계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다음 프로젝트에서 서비스 청사진을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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