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위한 시간은 미뤄둬요
다다음주 결혼을 기다리던 예비신부인 나는 한순간에 파혼한 여자가 되었다.
서류 한 장 없는 우리의 관계는 이렇게 빨리 끝이 날 수 있는 거구나...
결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의 파혼은 내가 어버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가 나를 집으로 데려가던 차 안, 예상과 달리 엄마는 내 옆에 앉지 않고 앞 좌석에 앉았다.
담담한 척하는 두 분 모두 내 얼굴을 보는 것보다 어둑해진 하늘을 보는 게 더 나았으리라.
나를 보지 않고 두 분은 말씀하셨다.
사실 그날이 꿈처럼 현실감이 없어서 자세한 대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부터 두 분은 불안했다고,
원래 그런 사업이란 게 위험성이 정말 크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면서 자주 불안해할까 봐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두 분이 반대한다고 멈춰 설 내가 아닌 걸 알고 있었고,
둘이 너무 사랑하는 게 보여서 그저 두 분은 축복을 해주고 잘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이게 현실이고 당장 저쪽 집안에서 널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는데 결혼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라고 했다.
부모의 빚이라는 건 어떻게든 자식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들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과 함께 죄송하다는 말만 하는 남자 친구의 모습이
딸의 인생을 함께 하는 배우자로서 한없이 약하고 어리게 보였을 것이다.
엄마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을 느꼈고, 아빠의 두 손이 온 힘을 다해 핸들을 꽉 잡은 게 보였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 입에서 터진 첫마디는 엄마 아빠에게 하는 사죄였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행복할 거라고 자신 만만 했는데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해요.
부모님 앞에서 소리 내서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꾸역꾸역 울음이 터져 나왔다.
냉기가 가득 찬 차 안, 휴지 한 장 없는 아빠의 SUV.
내 눈물과 뜨거운 숨 때문에 습도가 올라 유리창에 뿌연 습기가 찼다.
엄마가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뒤로 건네주었다.
내가 이렇게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날 알았다.
나도 이렇게 엉엉 꺽꺽 울 수 있구나...
"불쌍해. 그 애가 너무 불쌍해. 어떻게 해야 해. 너무 불쌍해. 우린 어떡해."
주체할 수 없게 떨어지는 눈물 사이로 아빠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내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앞에 앉았던 엄마는 뒤로 손을 뻗어 내 다리를 만져주었다.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마 엄마도 울고 있었으리라.
쉽게 진정되지 않는 나를 아빠는 본가로 데려왔다.
차에서 내리자 또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를 감싸며 외식이나 하고 들어갈까?라고 물었고,
아빠는 집에 가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고 했다.
그리고 눈물에 절어있는 나를 두고 두 분은 저녁을 준비하며 지인들에게 지체 없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오히려 목소리는 가벼웠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어, 그렇게 돼버렸네. 뭐 이런 일도 있는 거지. 그럼 나중에 더 잘되려고 그러나 보지."
이런 식으로 무거운 소식을 마치 오늘 저녁에 삼겹살 먹으려고~ 하는 투로 전하고 계셨다.
아빠는 나에게 얼른 신행 비행기표부터 취소하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지금 나는 막상 슬퍼하고만 있을 순 없구나... 탁 풀렸던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그렇지만 아직 나와 남자 친구는 서로 얘기도 제대로 잘 못했는걸...
이때만 해도 혹시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었나 보다.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옥상에 올라가 덜덜 떨면서 남자 친구와 사십 분간 통화를 했다.
변하는 건 없었다. 서른을 넘은 지 한두 해 된 우리 둘은 어렸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혼을 취소해야 했다.
집에 고이 모셔 둔 웨딩홀 계약서가 생각이 났다.
아... 우리 어쩌면 좋아? 위약금 장난 아닐걸?
둘 다 코맹맹이가 돼서 헛웃음을 켰다.
그렇다. 결혼을 약 2주 정도 남긴 구 예비부부에겐 슬픔을 오롯이 느낄 시간은 사치였다.
우리의 축복받을 하루를 위한 여러 업체와의 계약들이 남겨져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위약금은 커질 뿐이었다.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우선 인터넷으로 취소가 되는 비행기, 렌터카, 숙소, 여행지에서 하려고 예약해둔 액티비티 들을 먼저 취소했다.
네 달 전부터 꽉꽉 채워온 신혼여행의 계획들이 순식간에 지워지기 시작했다.
환불이 되지 않는 미국 국내선 비행기 값이 날아갔고, 다행히 몇몇 것들은 그냥 취소가 되었다.
그리고 웨딩홀...
우리가 파혼을 하기로 한 이 시점은 원래 내야 할 전체 돈의 70%를 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남자 친구는 이 일이 자기 때문에 일어난 만큼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울고 불고 할 틈도 없이 모든 것을 취소해가기 시작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눈을 뜨자마자 플래너님에게 전화를 하고,
웨딩홀에 전화를 하고, 동영상 촬영 업체에 전화를 하고...
브라이덜 샤워를 해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더 늦게 알릴수록 주위에서 더 충격을 받을 걸 알기에 바로 그다음 아침이 밝자마자 알리는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슬픔을 느낄 새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나 스스로도 이 눈물이 화가 나서 인지, 억울해서 인지, 무서워서 인지,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인지, 내 인생이 왜 이럴까 하는 답답함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손으로 끝내야 할 것들을 끝내야 했고,
우리의 결혼식에 오려고 표를 끊고 준비를 하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
이 헤어짐은 그냥 연인들의 헤어짐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바로 며칠 전 브라이덜 샤워를 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몇 시간 전에 받은 장미꽃을 올리고 했던 피드를 봤을 친구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이런 소식을 전하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작게 느껴졌다.
정말 인생 한 치 앞도 모르나 봐.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지고 앞으로 겪어갈 날들이 두려워졌다.
다시 심장이 쿵쾅거리고 주변 공기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쉬어야 했다. 온 힘을 다해 숨을, 내쉬어야 했다.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슬픔에 마구 휩쓸리다가는 악몽보다 지독한 불행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차마 일을 나갈 수 없어 가게에 휴무 공지를 걸고 그렇게 열 몇 통의 전화와 수많은 카톡, 문자를 주고받으며 어찌어찌 하루가 갔다.
슬픔을 꾹꾹 눌러 담으며, 애써 모른 척하며.
이 슬픔이 언제 나를 덮칠지 두려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