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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Dec 05. 2022

드라마 작가 지망생의 실수

변명거리 줄여가기

 모든 계획이 엉클어진지 한 달이 지났다. 

마침내 '결혼'에 관한 모든 계획들이 끝났다.


 정신없이 힘들 때는 

 '위약금 처리하면 좀 나아질 거야.'

 라고 나를 달래고 달래며 꾸역꾸역 해야 할 일들을 했다.


 유독 힘든 날, 날짜를 보면,

 '아, 오늘 원래 웨딩드레스 가봉 날이었구나. 그래서 힘든가 보다.'

 라며 우울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숨 막혀서 못 견디겠던 날은 

 '아 지금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 별 보고 있어야 했는데.'

 '이쯤이면 하와이 가는 비행기를 탔겠지?'

 라며 하루하루 아픔의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우리의 신혼여행 일정이 끝났다. 

16일 정도의 느긋했을 신혼여행. 

왜 하필이면 그렇게 긴 여행 일정을 짠 건지... 입 안이 유독 쓰다.


 참 미련스러운 미련이었다.

이미 내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했던 상상.

너무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던 일이라 더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오늘 이후 우리의 계획은 더 이상 없다. 

마치 결혼을 하고 나면 해피엔딩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신혼여행을 다녀와서의 계획은 전혀 세워놓지 않았다.

우리 둘은

 "말도 안 돼. 여행 다녀와서 각자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같은 집으로 들어가는 거야?"

 "우리 진짜 같이 사는 거야?"

 라며 겪어보지 않은 일을 막연히 기대했을 뿐이었다.


              출처 Terje Sollie, pexels

 

 16부작쯤 되는 드라마의 마지막 화라고 생각하고 수많은 씬을 써왔던 나.

주인공은 너와 나. 마지막 씬의 장소는 결혼식 장.

신혼여행은 에필로그에 나오는 행복한 여행 몽타주가 되었을 테지. 

출연진들의 이름이 올라가고, 

 '그동안 이 드라마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문구가 올라갈 때까지 보이는 장면들. 

 

"And we'll live Happy ever after."

 안타깝게도 해피엔딩은 없었다. 

적어놓은 극본대로 갔더라도 해피엔드는 없다.

내 드라마는 16부작이 아니니까.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


그렇지만 그가 나오는 시퀀스는 끝이 났다.

그래도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즐겁고 행복했던 씬들이 훨씬 더 많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지.

아, 가끔 회상씬으로 등장할지는 모르겠다.


 결론은 이제 이래서 슬퍼. 저래서 우울해...

이렇게 징징거릴 큰 변명거리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요 며칠 아침에 침대 밖으로 나오는 게 힘이 들었는데, 이제 투정은 그만 부려야겠다.


 도망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하는 날들이다. 

이젠 나를 조금 덜 봐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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