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연대기] - ①
2000년 7월, 온게임넷이 개국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온게임넷 개국하는데 같이 동참해주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OCN도 아니고 투니버스도 아니고 만들어지지 않은 온게임넷에 함께 사표 쓰고 와 달라고 하더군요. 그때 그분은 "언젠가는 게임이 스포츠가 될 수 있다. 게임으로 전 세계의 젊은이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정신 나간 소리를 믿었습니다.
- e스포츠 전문 캐스터 전용준
e스포츠. 게임물을 매개로 하여 사람과 사람 간에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 및 부대활동(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 e스포츠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e스포츠의 역사를 주도한 것은, 한국이었다. e스포츠가 스포츠냐 아니냐의 탁상공론은 하지 않는다. 그저, e스포츠의 역사와 그 역사 속의 인물들, 그 속의 서사들을 짚어볼 뿐이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게임인 <스페이스워!>는 MIT 학생이었던 스티브 러셀이 1962년 개발했다. 이전에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게임은 있었지만, 대중에게 보급되어 컴퓨터가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게임은 <스페이스워!>가 처음이었다. <스페이스워!>는 우주선을 조종하여 상대 우주선을 공격하는 경쟁 게임이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한, 세계 최초의 게임 대회가 1972년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8년 뒤인 1980년, 게임 개발사 '아타리'가 자사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스페이스 인베이더 챔피언십'이라는 대규모 비디오 게임 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1만 명 이상이 참가하며 최초의 대규모 비디오 게임 대회로 기록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개인용 컴퓨터, 즉 PC의 보급으로 온라인 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고, 그에 따라 다양한 PC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시티', '삼국지 3', '대항해시대 2' 등의 게임 등이 큰 인기를 끌면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늘어갔다. PC 보급과 PC 게임의 선두주자는 미국이었다. 그리고 1997년 9월, 미국의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가 내놓은 게임은 e스포츠의 시작을 알렸다. 그 유명한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이었다. 1997년 미국에서는 'PGL(Professional Gamers League)'이라는 세계 최초의 게임 리그가 출범하였으며, '스타크래프트'를 종목으로 채택했다.
미국의 온라인 게임이 빠르게 발전하던 이 시기, 한국에서는 외환 위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외환 위기는 e스포츠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되기 전까지, 한국은 PC 게임보다는 오락실 게임이 유행이었다. 오락실 게임의 인기 종류인 격투 게임은 한국 정식 유통사를 통해 전국대회가 개최되는 등, e스포츠의 초석을 다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는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 정식 발매되면서 PC 게임으로 흐름이 변화했다. 물론 이전에도 '워크래프트 2', 'FIFA 시리즈' 등의 PC 게임 대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결국 본격적으로 PC 게임이 게임 문화의 주류가 된 것은 '스타크래프트'의 등장과 함께였다.
정부는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산업의 도입을 위해 노력했고, 그중 하나가 정보산업이었다. 정부는 전국적인 인터넷 네트워크 산업을 육성하려 했고, 그러한 결과 중 하나로 PC방이 도시 곳곳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8년 이후 급속도로 늘어난 PC방들에 '스타크래프트'가 들어섰고, PC의 가정 보급도 대중화되며 집에서도 PC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급속도로 늘어났고, 1999년에는 국내 첫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KPGL(Korea Pro Game League)'이 창립되며 그 인기를 더해갔다.
한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초로 e스포츠 대회를 방송으로 송출하였다. 그리고 2000년, 드디어 e스포츠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등장했다. 21세기프로게임협회(現 한국e스포츠협회) 창립 행사에서 박지원 前 문화관광부 장관이 'e스포츠'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하면서, 한국은 e스포츠의 종주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는 '스타크래프트' 1세대 게이머인 'Honest' 신주영이었다. 신주영은 고향 대전에서 격투 게이머였고,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 출시되면서 PC 게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신주영은 PGL(미국 프로게이머 리그)에 한국인 최초로 등록되면서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 타이틀을 얻었다. 1998년 12월에는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스타크래프트'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1999년 군입대를 하면서 사실상 프로게이머 경력을 마감했다.
신주영과 함께 1세대 '스타크래프트' 선수로 활약한 선수는 'rainbow' 김태형, 'SSamjang' 이기석 등이 있었다. 김태형은 PC방 알바를 하면서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했고, 한국인 최초로 세계 래더 랭킹 1위를 차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프로게이머로는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고, 1999년 '투니버스'에서 해설을 맡게 되면서 e스포츠 해설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기석은 국내 최고 대회 KPGL을 2회 연속 우승했고, 신주영에 이어 2차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를 우승하며 이름을 날렸다. 이기석은 이후 다룰 'BoxeR' 임요환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한국의 1세대 프로게이머들은 다수 광고를 촬영하고, 이기석은 당시 최고의 TV 토크쇼 <김혜수의 플러스 유>에도 출연하면서 대중 인지도를 높여갔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과 e스포츠가 빠르게 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방송사 '투니버스'는 스타크래프트 방송을 심야에 송출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 결국 2000년 2월 2일,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전문 방송국 '온게임넷'이 설립되고 같은 해 7월 24일 개국하며, 한국의 e스포츠가 더욱 발전하는 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