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무 우울해
고용량의 호르몬 주사를 맞는 날이면 주사하고 몇 초 뒤에 콧속으로 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숨을 내쉬는 30분 동안은 약 냄새가 맴돌다 보니 내가 환자라는 것을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숨결 따라 덩달아 입 안이 썼다.
처음 주사를 할 때 혼자 하는 것이 무서워서 남편에게 슬쩍 부탁을 했었다.
“내 대신 주사해 줄 수 있어?”
“으으, 할 수 있는데 네가 아플 까봐 못 하겠어.”
주사 맞는 나보다 더 울상이었다. 가뜩이나 처진 남편 눈썹을 더 처지게 할 수는 없어 용기 내어 배에 주삿바늘을 쿡 찔렀다.
‘오, 맞을 만하네?’
알코올 솜으로 쓱 닦아내고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이 정도의 ‘따끔’이라면 혼자 할 수 있다. 괜히 벌벌 떨었나 싶다. 내게는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부끄러운 각오가 있다. 배에 주사 바늘을 찔러 넣기 전에 두려움이 슬며시 피어오를 때마다 그 마음을 누르려고 내게 속삭인다.
‘이 정도도 못하면 난 엄마가 될 자격이 없지. 앞으로 더한 일도 있을 걸? 난 할 수 있다!’
한 구석에서 찡그리고 있던 남편은 긴장을 놓고 의자에 널브러진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대견스럽고 어여쁘게 봐주는 사람. 이 나이에 아직 칭찬받을 것이 있어서 기분이 묘하지만 좋았다.
시험관아기 시술하는 동안에는 주사와 친해져야 했다. 다들 이 시술이 힘들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배란 촉진 호르몬을 과자극하여 난포의 수를 늘리는 것부터 시작인데 병원에서 주사약을 처방받고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맞춰 과배란 유도제를 주사하면 되었다. 시술에 사용하는 모든 주사들은 피하주사라 내가 직접 배에 주사를 해야 했다. 피하지방이 두둑한 내 뱃살을 잡고 뾰족한 주사 바늘을 찔러 넣는 일은 1주일을 연달아 넣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주사 공포증은 없지만 주사 맷집이 있던 것은 아니니까.
병원에서 주사 처방전을 받으면 매번 주사실에서 주사약을 받아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 방법과 용법을 알려주시면서 당일 주사약을 놓아주시는데 매 시술마다 주사약이 조금씩 달라져서 안내가 필요했다.
훗날 일이지만 주사해야 하는 약물 중에는 분말과 용액을 섞어서 사용할 때가 있었다. 방법이 어렵지 않았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알려주시는 내용을 입말로 외우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간호사 선생님은 걱정 어린 눈으로 병원 홈페이지에 사용법 영상이 있다고 했다. 용법을 외우느라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니 또다시 말을 건넸다.
“주사 못 하시겠으면 병원으로 오세요.”
“아! 정말요?”
“그런데 비용은 청구됩니다.”
“아, 네에…….”
숙련자가 넣는 것이 덜 아파서 손을 빌려볼까 했지만 매번 비용이 든다고 하니 깔끔히 포기했다. 고급 기술자에게는 응당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맞지만 왕복 차비까지 합하니 비용이 꽤 들었다. 돈으로 맞설 준비가 안 된 나는 강해지기로 했다.
새벽 5시40분. 기상 알람이 어둠을 깨웠다. 출근하기 전에 과배란 주사를 놓으려면 일찍 일어나야 했다. 회사 화장실에서 맞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난 위생이 신경 쓰였고 직원들에게 혹여라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침마다 분주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연말이 되니 회사는 박람회 준비로 바빴다. 스타트업이라 회사 홍보와 실적을 위해 박람회 참여가 필요했다. 회사는 박람회 기간 동안 난임 시술을 하는 나를 위해 현장 참석을 배제해 주었고 대신 사무실에서 현장 지원을 해달라고 했다. 날짜를 따져 보니 박람회 기간에 배아 이식이 이뤄질 것 같아서 내심 고민하였었는데 다행이었다.
과배란 주사를 다 맞고서 중간 점검으로 난포가 잘 자랐는지 초음파 검사를 했다. 첫 시도부터 고용량의 호르몬제를 맞았는데 난포는 5개뿐이었다. 남들은 10개 이상씩 생긴다는데 현저히 적은 양이었다. 더구나 이 녀석들 모두가 채취될 지는 열어봐야 안다고 하니 절망이었지만 희망을 가졌다. 아예 안 생기는 것보단 나으니까. 병원에서는 채취 이틀 전에 맞는 난포 터트리는 주사를 주며 꼭 정해준 시간에 맞으라고 했다. 시간이 중요한 주사라며 덧붙여 말했다.
밤 11시. 정해준 시간에 맞춰 평소처럼 주사 바늘을 배에 꽂는 순간 눈썹이 일그러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바늘이 안 들어갔다! 이전 주사기와 다르게 바늘이 좀 굵어져 긴장했던 탓일까? 간신히 바늘을 꽂았지만 약이 들어갈 때도 뻐근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직 1개 더 남았다. 맞은 부위가 아리고 벌게지니 주사가 맞을 만하다는 생각은 접었다. 이후에도 처방 약물마다 아픔의 정도는 달랐지만 조금이라도 아릿할 때면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에게 아프다고 징징거렸다. 처진 눈썹에 입꼬리까지 처지는 모습을 보니 덜 아픈 느낌이었다. 여보, 미안.
채취를 앞두고 있던 날, 나는 상사가 지시한 일을 처리하기 버겁다고 말했다. 그러자 서로 바쁘고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기지 않았다. 상사였기에 알겠다고 했지만 대답과 달리 내 마음은 무너졌다. 유연하게 넘어가면 좋았을 텐데 이 날은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혼자 한숨을 푹푹 쉬다 보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곧 첫 난자 채취가 있었기 때문에 더 심란했으리라.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호르몬의 노예였던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호르몬제를 맞고 나면 기분이 처지기도 한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잘 보지도 않는 난임 커뮤니티를 뒤져보았을까? 대다수가 그랬다고 하니 전적으로 믿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이 당시에 마음이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만 야박하게 구는 것 같았다.
5호선과 6호선 환승 구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줄을 섰다. 퇴근 시간대라 사람들로 붐볐고 정신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는 순간이었다.
고개 숙이며 걷던 걸음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너무나 괴로웠다. 사람들의 눈과 얼굴이 괴물처럼 괴팍하게 보였다. 모두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자들일뿐인데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곤욕이었다. 내가 사람 보는 것을 싫어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낯선 경험이라 혼란스럽고 머리는 멍해져 갔다.
“나 너무 우울해.”
입 밖으로 튀어나온 우울은 시야를 뿌옇게 만들었고 소리는 물속에 가라앉듯 먹먹했다. 그래도 나는 이 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걸어가야만 했다. 이 자리에서 멈추면 진짜 멈출 것이다. 어서 집에 가자.
우울에 젖어 발길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