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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선생 Dec 02. 2024

사춘기에는 역시 농구!!

마라톤 풀코스 완주 도전기 46

사춘기가 한창이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농구장에서 살았다.


현대의 '슛도사' 이충희와 삼성전자 '정자슈터' 김현준이 첩혈쌍웅을 이루며 '농구대잔치'를 비롯한 우리나라 농구판을 씹어 먹던 시절이었다. 사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중앙대 농구부'의 등장이었다.


2m 7cm의 한기범, 197cm의 김유택이 '쌍돛대', '만능 공격수' 강정수가 라인업의 주축이었다. 이후에 '마법사' 강동희와 '사마귀 슈터' 김영만까지 중앙대 농구부의 저력은 시대를 압도했다(추억이 가득한 이름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오랫동안 저력을 갖출 수 있었던 정점에는 '농구 대통령' 허재의 존재였다. 그는 당시 인기의 아이콘이었고, 앞으로도 우리나라에 그보다 더 농구를 잘하는 사람이 나올까를 재고 있다. 쉽지 않아 보인다.


중앙대 이후에는 화려한 오빠부대인 연세대와 고려대 농구부가 그 인기를 뒤이었다. 그만큼 우리가 사춘기를 보내던 시절에 농구는 절대적인 존재였다(농구 칼럼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만 쓰고).


중학교 이후 키 크지 않았다. 하지만, 덩치가 있어서 친구들은 항상 내가 크다고 생각했다. 또 육중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농구를 할 때는 센터나 포워드와 같은 포지션으로 골밑에서 움직였다. 농구장은 순간적인 속도가 나와야 하는 운동이라 가속도를 붙여 달리던 나에게는 불리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속공도 수비도 같이 뛰고 함께 뒹굴며 농구 자체를 즐겼다.


농구를 할 때는 스트레스를 모두 잊고 뛰었다. 잘하고 못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었다. 그저 공을 주고받으며 그 공간을 헤집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어쩌다 던진 슛이 들어가면 행복했고 그렇지 않아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건 단지 내가 농구를 특별히 좋아하는 아이여서가 아니다. 선생들이 어떤 학생을 찾을 때 모두가 "아마 농구장에 있을겁니다."라고 대답할 만큼 학교 농구장은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설령 농구를 하지 않는 아이들까지도 농구장 주변을 어슬렁거릴 정도의 핫플이었다.


우리끼리 만들었던 농구동아리도 있었다. '스콜피언스'

기존에 선배들이 만들어 놓았던 동아리에서 농구를 잘하는 친구들을 스카우트(?)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친구들은 자기들만의 노선을 선택했다. 멋진 녀석들이다. 그들과 함께 뛸 수 있어서 좋았다.


공부는 뒷전에 두고 농구장만 전전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의 걱정은 높아만 갔다. 하지만, 어떻게든 농구장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사춘기의 불안함을 떨쳐내곤 했다.

<이번 주는 10km LSD. 과음한 다음 달리느라 심박수를 잡을 수가 없었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고등학교 #농구 #중앙대농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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